소원을 이루는 신앙인의 태도

작성자
김상희
작성일
2024-02-04 17:48
조회
114


소원을 이루는 주체가 ‘행운(Luck ← Good luck to you!)’이라는 내용을 3권의 책 속에서 읽었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삶의 좋은 일과 나쁜 일들이 반복되면서 평균적인 삶이 유지된다는 ‘평균으로의 회귀’는 설명이나 이해가 어려워 심리학자나 과학자들에게 매우 불편한 이론이라 합니다. 결국은 성취나 업적이 인간의 능력과 노력이 아니라 행운(Luck) 때문이다라는 결론을 읽었을 때 겸손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목사님 덕분에 행운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인 걸 확신하지만 그때는 그랬습니다.

물리 전공인 지인에게 현재도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과학계의 이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믿음이 아직 없는 지인의 답변은 그냥 우연이라고 했습니다. 전도를 유념하면서, 우연의 우연, 우연의 우연의 우연은 어떻게 설명하는지 물었고, ‘우연의 일치는 익명성을 유지하는 신의 방법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명언을 언급해 보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과학의 양극단에서 신앙으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 많아서인지 물리 전공 교수님 중에 기독교인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행운이나 우연을 넘어 하나님의 섭리를 기대하며 소원을 이루기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것도 특권임을 압니다. 그러나, 소원 성취의 지연이나 악인의 형통함으로 인해 시험에 들게 되어 영성이 부족한 자신을 탓하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악인의 심판을 유보하심은 그들의 운명이 이미 결정되었기 때문(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해짐)이기도 하고, 악인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큰 프로젝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판주는 하나님이시기에 악인으로 인해 불평하거나 시기하지 말고 여전히 선을 행하라고 하십니다.

3시부터 설레는 사막 여유와 같이 성령님에게 길들여진 관계 맺음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결국 여호와를 의뢰하며 기뻐하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제 가슴 속 소원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좌절된 소원을 넘어 새로운 소원을 꿈꾸게 하시는 하나님, 목사님 감사합니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