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마음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

작성자
임형수
작성일
2024-03-09 08:36
조회
158
얼마 전 최민식 영화배우님이 어떤 TV프로에 나와서 영화 대본을 연습할 때 영화 속 맡은 배역의 그 인물 자체가 되려고 노력한다는 이야기가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통해 요즘 다소 느슨해지고 형식적으로 말씀을 보는 경향이 있는 저에게 참 많은 도전을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 그래 다시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가서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상고하고 연구해 보자’

그 일환으로 언젠가부터 말씀 묵상할 때마다 가볍게 치부하고 넘어가 버린 성경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에 동화되어 보자라는 도전하는 마음을 성령님께서 부어 주셨습니다

신,구약시대 당시에 등장하는 성경 속 인물들이 겪었을 감정, 느낌, 분위기, 상황과 배경등을 고려하여 한명 한명의 인물에 동화되어 그들의 삶 가운데 들어가 보고자 합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의 계보에 오른 라합, 탐욕으로 전리품을 훔친 아간, 예수님을 만나고 변한 삭개오,향유 옥합을 부은 여인, 어느 한 백부장의 고백, 근심하고 돌아간 부자 청년,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 등 수많은 성경 속 이야기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구절이 나올 때마다 감정에 이입 되어 신실한 믿음을 붙잡은 인물들에 동화되어서는 자극을 받아 도전과 다짐을 하는 계기가, 믿음이 연약하여 실족한 인물을 통해서는 공감과 위로를 얻기도 합니다.

성경 속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에 동화되어 그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모든 이야기 끝엔 믿음을 붙잡으려 발버둥치거나 믿음이 연약해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게 하시니 오늘은 라합, 내일은 아간의 모습이 제가 될 수 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심지어 불경건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간헐적으로 예수님에 동화되어 성경 속 등장하는 인물들을 바라보며 긍휼의 마음, 사랑의 마음, 기쁨, 배신의 아픔, 슬픔, 외로움, 고통, 두려움 등 여러 감정에 이입되어 주님의 마음을 느껴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주일 목사님께서 들려주신 주일 설교 시리즈 두 번째 말씀 “세상의 빛이신 예수그리스도”는 며칠 동안 개인적으로 묵상하고 사랑방에서의 진솔한 나눔과 순장님의 깊고 짙은 부연 설명까지 더해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세 가지 종류의 죄인들에 감정이입 되어 ‘나’라는 인간은 어디에 더 가까운 유형에 속하는지 생각해 보는 아주 귀중한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예수님의 두 번째 신적 선언은 주로 (요 8:12~20절)까지의 본문으로 다루어지지만 목사님께서는 (요8:3~12절)의 본문으로 다루어 주셨기 때문에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관점에서가 아닌 오직 죄인인 한 여인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묵상 할 수 있었기에 더욱 더 은혜로운 시간으로 다가 올 수 있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커다란 4개의 대형 금촛대에 찬란하게 불이 밝혀진 ‘여인의 뜰’ 한 복판에서 큰소리로 선언하신“나는 세상의 빛이다” 라고 목사님께서 더욱 힘주어 말씀하시는 대목에서는 마치 이 천년 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주님의 존전 앞에 비추어진 찬란한 빛 가운데 압도되어 저의 죄가 낱낱이 발가벗겨진 채 죄인 그대로의 모습으로 무릎 꿇고 있는 아무것도 아닌 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내 엎드려 울며 고백하고 있는 베드로를 떠올리며 감정에 이입되어 동일한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 앞에 저는 죄인입니다”“거룩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라는 고백을 기쁨의 눈물로 전심의 마음으로 올려 드릴 수 있었습니다

말씀에서 다루어 주신 세 가지 종류의 죄 가운데 첫 번째로 간음하다 붙잡혀 온 여인이 저지른 죄의 형태는 지독히도 끔찍한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여전히‘구원 받은 죄인’인 저와 너무나도 흡사한 것을 깨닫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별로 죄 지은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저 또한 그런 생각을 아주 쉽게 품으며 살아갑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죄를 범하고 있지 않으니 ‘나 정도면 괜찮은 사람 아닌가?’하며 교만한 생각을 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교만, 정욕, 미움, 탐심, 거짓말 등 마음으로 짓는 죄를 도무지 죄라고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틀 전 사랑방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도착해보니 현관 입구부터 신발 정리가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평상시에도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아내가 사랑방모임을 하는 날이거나 집에 손님이 방문을 하는 날이면 평상시보다 집 안 전체가 더욱 더 깔끔해지고 정리정돈이 완벽한 상태에 이르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한 눈에 집에 손님이 다녀갔다는 것을 알아 챌 정도로 말입니다

맞습니다. 저 또한 집안에 단 한명의 손님이라도 올라치면 호들갑을 떨면서 말끔하게 청소하고 정리하는 등 마음가짐이 확연하게 달라지는 걸 목도합니다. 반면에 제 마음에 찾아오신 주님은 푸대접하기가 일쑤입니다

손님이 아닌 영원한 주인으로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있으면서도 저의 마음은 말로 다 형용 할 수 조차 없을 정도의 온갖 더럽고 추잡한 죄로 뒤덮인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죄로 얼룩지고 오염되어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말구유 같은 제 마음 안에 주님을 유기, 방치하며 무시하고 있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죄를 짓지 않고 있기에 깨끗하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파옵니다.

너무나도 쉽게 쉽게 하루에도 수 백 번씩 세상과 간음하며 마음으로 죄 지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저는 어쩌면 눈에 보이는 간음한 여인의 죄질보다 더 악한 인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정결하지 못한 마음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탄식이 세미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두 번째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즉 종교지도자들의 죄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인지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었으며 간음한 여인을 통해서 예수님을 죽이려는데 목적만 가득한 자들이었습니다, 즉 율법을 끄집어 대며 예수님께 질문을 하지만 그들의 속내는 어린 여성을 희생해서라도 예수님을 고소할 명분을 찾으려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지은 죄를 깊이 묵상하는 과정에서 저에게서도 흡사한 죄를 역시나 쉽게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가끔은 말씀을 묵상하면서 또는 아내와 말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생각이나 말을 던지곤 합니다

“ 이 말씀에 순종 하는게 가능해? 정말 과연 가능할까? ”예를 들면 이런 질문이나 생각들입니다

“쉬지 말고 어떻게 기도하라는 걸까?”“항상 어떻게 기뻐할 수 있지? 애초에 불가능한 말씀 아닌가?”

등등 이런 유형들의 질문들을 셀 수도 없을 만큼 하는 것 같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 할 마음이 애당초 없으면서 단지 저의 생각과 행동을 합리화하고 저의 주장에 동의 해 줄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 이러한 질문을 하는 저의 모습에서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이 투영됩니다

어느 순간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들이 품고 있었던 궤계와 농간의 악한 마음에 동화되어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여전히 제 안에 가득 넘치는 죄성은 어찌 할 수 없을지라도 이런 은밀한 죄와 마귀의 종노릇은 하고 싶지 않은데 너무나도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 마음이 또 울컥해 집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죄는 간음한 여인을 비난하며, 돌을 들어 던지려고 한 사람들의 죄입니다.

이들은 율법을 위반하는 큰 죄를 저지른 그 여인을 심판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돌을 집어 들고 당장이라도 간음한 여인에게 던지려고 기다리고 있는 그들의 표정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험악하고, 살기등등하며, 분노와 핏발이 서 있는 모습이었을 겁니다

마치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결코 낯설지 않은 모습입니다. 맞습니다. 바로 저의 표정입니다

간음한 여인과 같은 커다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어도 작은 실수나 잘못에도 가차 없이 정죄하고 비난하고 제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서서 무섭게 심판합니다

차갑고 날카로우며, 사납고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저이기에 돌을 들고 서 있는 그들을 나무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100%, 아니 200% 감정에 이입되어 있는 저를 봅니다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간음한 여인보다 정결하다고 생각하지만 주님 보시기에 어쩌면 더 추악한 범죄자 일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간음한 여인, 종교지도자들, 돌을 들어 던지려 한 사람들..

성경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이 세 종류의 사람들의 감정에 각각 이입되어 보니 우열을 가릴 수 없는 하나 같이 모두 똑같은 죄인들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죄의 종류, 형태, 횟수, 경중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모두가 동일한 죄인일 뿐입니다

성경속 인물들의 감정에 이입되어 갈수록 더욱 더 확연하게 드러나는 타락한 본성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악한 영의 유혹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죄에 대한 죄책과 매 번 실족하고 실패하는 자책에 빠져 있을 즈음에 목사님의 설교 마무리 시점에서 해주신 말씀이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습니다

“죄 가운데서 모두 죽어야 마땅한 죄인이었지만 찬란한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와 주셨습니다

찬란한 빛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더러운 죄의 문제도, 빛 바랜 우리의 과거의 상처도, 마치 잿빛처럼 얼룩진 우리의 실패도, 찬란한 빛으로 지우실 거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찬란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결코 정죄함이 없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기를 축원해 주시기에 오직 우리 구주 예수님 안에 거하며 주님만 바라보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결코 저를 정죄하지 않으시는 찬란한 빛으로 오신 주님을 찬양하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주님!

제 마음에 아직 칙칙하고 냄새나는 암막 같은 휘장이 드리워져 있사오니 주님의 찬란한 빛이 제 안에 들어 올 수 있도록 걷어 내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찬란한 빛이 제 마음에 비추어져 주변에 소중한 사람들에게 율법적, 도덕적 잣대로 정죄하지아니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품고 바라 볼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 목사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일깨워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전체 1

  • 2024-03-10 18:22

    미국에서 우리 아카데미 학생들 가르치느라 땀 뻘뻘 흘리고 계신
    목사님께서 이 글을 읽으면 무척이나 기쁘고 힘이 나시겠어요 ^^

    간음한 여인을 심판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었던 자들이
    돌을 내려놓고 모두 떠나갔던 이유는 !!
    *바로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신적 권위를 경험했기에 그 자리를 떠났다는 말씀을 들으며....
    (히4장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찬란한 빛이 임하면 어둠이 물러나는 것처럼 !!
    생명의 빛으로 오셔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건져내신
    예수님의 십자가 !!
    그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을 일깨워주신
    목사님께 저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꾸 ~~~ 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