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부흥사경회 제4과 <용서와 행복>말씀 요약

일반
작성자
윤휘종
작성일
2020-11-16 22:36
조회
392
2020부흥사경회 11/16(월) 저녁 제4과 용서와 행복

*말씀을 본질적으로 알기 위한 자세
  • 말씀 앞에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선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하나님, 저는 잘 모릅니다.”
  • 본문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하라. 우리는 분주하고 관심이 없고, 안다고 착각하여 질문하지 않는다.
  • 본문이 나에게 질문을 하도록 허용하라. “나는 이 말씀을 정확히 아는가? 나는 말씀을 삶 속에 적용하고 있는가?”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13:17) 요한복음 13장의 주제: 주님이 가르쳐주신 행복의 비결. 행복의 비결을 알려주기에, 우리는 요한복음 13장을 깊이 탐구해야 한다.
  1. 세족식 앞과 뒤에 있는 다음 말씀을 설명해 보시오.
“유월전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 주님께서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실 때가 된 줄 아셨다.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요13:12)

=> 세족식은 말씀을 가르치기 위한, 퍼포먼스, 그림언어이다. 제자들은 당시 세족식의 의미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는 알 것이라 말씀하신다(요13:7). 지금은 모르지만 성령이 오시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요16:12). 영적 지식을 깨우치는 것이 내 안에 성령이 역사했다는 증거다.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서 진리를 가르치시는 분이시다.

2. 주님과 베드로의 대화가 주는 교훈

공관복음에서 열 두 제자를 소개할 때, 베드로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온다. 반면에 가룟 유다의 이름은 맨 마지막에 나온다. 그러나 세족식을 진행할 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마지막에 씻기셨다. 이로써 우리는 성경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세족식을 진행할 때, 예수께서 가룟 유다를 맨 처음으로 씻기셨을 수도 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베드로는 자신을 씻기려 하시는 예수님을 거부한다. 이것은 자신이 세족식의 의미를 알고 있다는 전제에서 발생한 행동이다. 당시 유대 문화에서는 종이 주인의 발을 씻기기에, 베드로는 선생이신 예수께서 씻기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자가 선생을 씻겨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세족식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있었다.

3. 주님께서 세족식을 통해 가르치신 교훈

세족식의 기본적인 의미: 섬김, 사랑.

세족식의 본질적인 의미: 용서.

용서를 실천하면 행복하다. 원한을 품고 살아가면 절대 행복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아시면서도 발을 씻기셨다. 발을 씻어준다는 의미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의미다. 마음 속에 가룟 유다가 없어야 행복하다.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요13:14) 우리는 가해자이자 피해자이다. 용서할 줄만 아는 것이 아니라, 용서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 자신은 ‘용서만 하겠다’는 것은 자신을 항상 피해자로만 여기는 자기 의다.

*누가복음 7장: 두 번째 세족식. 죄지은 여인이 예수님에게 기름 붓고 발을 자기 머리털로 씻겨드렸다. 이에 대해 바리새인은 정죄한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더 빚 주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신다.

많이 용서 받을수록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 많이 용서 받은 줄 아는 사람이 복음을 경험한 사람이다. 자기 의로 가득한 사람은 자신이 많이 용서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가 많이 탕감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4. 다음의 말씀이 주는 교훈

어떻게 마음 속에 가룟 유다를 없앨 수 있을까?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요13:18)

나와 그 사람의 관계 속에 하나님을 개입시켜라.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는 것이다. 관계 속에 하나님을 개입시키면,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가 없다. 자존심이란 나와 그 사람과만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자존심이 들어올 여지가 있는가?

내가 착해서, 그 사람이 불쌍해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응하게 하기 위해 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나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는 자.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요13:30-31)

예수님은 십자가를 영광으로 여기신다. 십자가를 영광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십자가가 어렵다.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17:4)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다. 그것을 영광으로 여기셨다.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다. 용서를 하면 다른 사람이 나로부터 예수님을 보게 된다.

5. 주님의 마지막 가르침이 주는 교훈

요한복음13장: 용서에 대한 교훈

요한복음14장: 성령에 대한 교훈

요한복음15장: 열매에 대한 교훈

나무와 열매는 본질이 같다. 예수님에게 붙어있으면 예수님의 열매를 맺는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예수님의 열매는 무엇인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곧 성령의 열매다. 용서는 곧 사랑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용서가 쉽다. 사랑, 용서는 절대 내 힘으로 이룰 수 없다.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용서해야 행복한데, 용서를 위해 전제되는 것은 성령 충만이므로 성령 충만이 곧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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