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의 평범성

작성자
윤휘종
작성일
2021-07-26 09:35
조회
629
<타락의 평범성>

우리는 보통 '악인'이라는 단어로, 포악한 성정을 가진 인간을 떠올립니다. 선량한 시민, 특히 자기 자신은 잔인무도한 악행을 일삼은 사람과는 철저히 구별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악의 평범성' 테제를 주장합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평범한 개인도 언제든지 악행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유대인인 한나 아렌트는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합니다. 이후 유대인 대학살 문제의 총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의 재판이 열렸을 때, 특파원의 자격으로 재판을 참관합니다. 법정에서 아이히만은 본인은 단지 명령에 순종했을 뿐이고, 죄가 없다는 말만을 되풀이했습니다. 아렌트는 처음에 죄를 뉘우치지 않는 아이히만의 태도에 분노했습니다. 그러나 재판 과정을 지켜볼수록,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말에 진정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이히만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화목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국가의 명령에 순종한 애국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아이히만에게 있었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생각의 부재"였습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자신의 행동을 반성적으로 고찰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렇습니다. 평범한 개인도 주어진 명령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행동이 끼칠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은 채로, 맹목적으로 명령에 순응할 경우, 끔찍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타락이란 어제보다 오늘 하나님과 조금 더 멀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세상적으로 큰 죄를 저지르지 않을 경우, 타락과 나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여깁니다. "어제 순종했으니까 오늘은 괜찮아", "이 정도는 타협해도 돼"라며 스스로를 위안합니다. 그러나 타락은 세상적인 죄와만 관련되어있지 않습니다. 세상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더라도,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라도,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행하는 모든 일은 타락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적 관점이 아닌 영적 관점입니다. 적극적으로 끔찍한 죄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면, 그만큼 하나님과 멀어진 것이고, 그만큼 타락한 것입니다.

코로나 4차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다시 현장예배가 폐쇄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간듯 합니다. 처음 코로나로 인해 모든 예배가 온라인 예배로 전환되었을 때는 처음 겪었던 사건인 만큼 영적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변화는 일상이 되어버렸고, 그때만큼의 긴장감이 없어졌습니다. 점점 지쳐가고 나태해진 제 모습이 보입니다.

신앙은 경력이 아닌, 영성이기에 "지금 나는 듣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일평생 묻고 대답해야할 숙제인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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