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을 대하는 신앙인의 태도

윤휘종 윤휘종
작성일 2020-09-15 10:41
조회 96
카테고리 일반
1. 코로나19로 인한 고난 속에서 무엇을 희망해도 되는가?

 

코로나19로 인하여 소중한 사람을 잃은 분들도 계시고, 여러 후유증과 경제적 고통을 받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 내가 그나마 어느정도의 일상을 지낼 수 있는 것은 현장에 있는 의료진과 공무원들의 노고 덕분이다. 현장 예배가 중지된지 9개월이 넘어가는 초유의 사태를 지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이전에는 한 번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처음으로 물질의 결핍으로 생기는 현실적 어려움과 두려움을 경험해본다. 감염병 전문가도 아니고, 방호복과 마스크를 뒤집어 쓴 채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의료진 혹은 공무원이 아닌 내가 코로나 사태에 대해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지금 당장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은 N차 감염을 막는 방역과 중환자들을 위한 치료 혹은 경제적 안정망을 확충하는 일 외에 다른 것이 없다고 느껴질 수 있다. 이 시국에 신앙인의 태도에 대해 성찰해보는 것은 뜬 구름 잡는 얘기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일상의 단절과 경제적 어려움, 감염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소위 '코로나 블루'로 불리는 우울증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과 교회 내외부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충돌을 보았을 때, '심리적' 방역 또한 중요해보인다. 이번 사태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았던 경제적 위기(IMF 외환위기, 2008 금융위기)와 2009년에 유행한 신종플루로 인해 발생하는 부정적인 감정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알상의 단절을 통해 코로나는 우리에게 그동안 묻지 않았던 인류의 생활 방식 자체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을 요구한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처한 신앙인은 자연스럽게도 교회의 방향성과 예배의 예배다움신앙의 본질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신천지에게 쏟아졌던 세상의 비난, 그리고 코로나가 신천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말을 일삼은 몇몇 목회자의 말들이 고스란히 이제 교회를 향해 돌아오고 있다. 나아가 정치세력으로 전락한 일부 교회, 정부를 투쟁의 대상으로 삼고 가짜뉴스에 선동되는 교인들의 행태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이고, 우리에게 그러한 모습은 없는지,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신앙은 물질세계만을 대상으로 삼지 않고, 과학이 줄 수 없는 삶의 의미와 목적, 가치를 인류에게 가져다 준다. 신앙인이라면, 단지 눈 앞에 놓인 감염의 위험과 경제적 어려움만을 피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극복하면서 신앙의 본질과 방향성, 비전에 대해 숙고해보아야만 한다. 성경에는 코로나보다 더 크고 무서운 고난을 이겨낸 선배 신앙인들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질문은 여기저기 다양한 곳에서 쏟아져 나오지만 답은 오로지 성경에 있다. 지금 당장 코로나19가 제기한 근본적인 성찰에 대해 답하기는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경 인물과 말씀 속에서 우리는 분명히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과, 결국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는 것이다. 


2. 현장 예배 혹은 온라인 예배? 


코로나가 교회에 던진 구체적인 질문으로는 "현장 예배만 진정한 예배인가, 온라인 예배도 예배인가?"는 질문일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답은 성경에 있다. 사실, 현장 예배를 드리지 못한 위기과 그에 대한 논쟁은 오늘날의 문제만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예배를 진정한 예배로 생각했다. 성전중심주의이다.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은 성전의 부재가 백성들의 이탈로 이어질까봐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운다. 이후 신약시대에 이르러,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묻는다. "우리는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한다. 어디서 드리는 예배가 전정한 예배인가?"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찌니라." 예수님께서는 둘 중에 어느 한 곳이 옳다고 답하시지 않는다. 대신에 당신 자신으로부터 이미 시작된 미래를 지시함으로써 답하신다. 예배의 본질은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다. 성령으로 드리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이다. 따라서 진정한 예배를 위해서 전제되는 것은 내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성령께서 내 안에 임재하신다면,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위로부터 거듭난다면, 우리가 있는 현장은 어디서나 예배의 현장이다. 


3. 코로나19는 소비로 움직이는 거대한 자본시장의 열차를 멈춰 세웠다. 교회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자본주의는 소비로 움직인다.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다시 투자하여 이윤을 극대화한다. 더 큰 이윤을 남기는 것이 우리 사회의 최고의 목적이자 미덕으로 여겨졌다. 성장만능주의다. 다른 가치들은 모두 부차적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오로지 성장에만 전념한 결과, 인류는 무분별하게 환경을 파괴했고, 이에 따른 환경오염, 기후변화의 위기를 맞고 있다. 코로나는 이러한 인류의 행태에 경고를 준다. 자연의 파괴로 야생동물과 인류의 밀접한 접촉이 잦아져서 새로운 전염병의 위기가 높아지고, 일회용품 사용의 증가로 인류는 매주 신용카드만한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한다. 지구의 온도는 계속 올라 땅이 잠겨버리는 일이 영화 속의 재앙이 아닌, 현실로 금방 다가올지도 모른다. 또한, 코로나는 계층의 양극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소득수준에 따라 감염위기, 경제위기가 더 크게 다가온다. 비대면 업무가 불가능한 현장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실직, 마스크 살 돈에 허덕이는 사람들, 길거리에 눌어앉아 개인방역이 어려운 노숙자들, 공공장소 외에 쉴 공간이 없는 고시원 사람들 등, 사회의 조명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현실이 비춰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지속가능한 성장, 공존가능한 성장의 길이 필요할 때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떠한가? 한국 교회는 한국 경제의 성장와 함께 부흥했다. 신도의 수가 증가하고, 건물의 크기가 비대해졌다. 누가 모이느냐가 아닌, 얼마나 모이는가에 집중했다. 목회자에게 비춰지는 스포트라이트도 '얼마나 큰 교회는 이끄는가'라는 질문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식의 기준으로 평가하자면, 세상에 더 대단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워렌 버핏 등, 크기와 명수로 따지면, '스타' 목사보다 더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 다윗이 하나님의 칭찬을 받은 이유는 그의 영토와 인구수 때문이 아니다. 성장에만 집중한 오늘날 교회의 현실이 어떠한가? 성도들은 제대로 된 교육은 받지 못해 잘못된 신념에 빠져 가짜뉴스에 휘둘리며,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정치세력과 결탁해 힘을 과시하고, 국가의 방역에 막대한 피해만 끼치고 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할 교회가 짠 맛을 잃고 말았다. 이제는 건물의 크기와 성도 수가 아닌, '한 사람'에 집중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모이는가, 누가 모이는가에 답해야 한다. 누구나 교회에 올 수 있지만, 누구나 성도가 될 수는 없어야 한다.


우리는 터널을 지나고 있다. 힘들고 어렵지만, 언젠간 끝이 있다. 어둡지만, 언젠간 빛이 비춰질 것이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무릎 꿇고 겸비하며, 비판하기보다는 성찰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주변을 섬길 때, 또 다른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가 가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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