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0(수) 온라인 새벽예배

윤휘종 윤휘종
작성일 2020-05-20 11:49
조회 526
카테고리 일반
2020.05.20(수) 온라인 새벽예배
말씀: 요한복음 20장 11-18절

본문에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제일 먼저 나타나시고 자신을 설명하시는 장면이 등장한다.

마리아의 말을 듣고 요한과 베드로가 무덤을 찾았을 때, 요한은 세마포가 놓인 것을 확인하고, 베드로는 세마포와 수건이 놓여 있는 것만 확인한다.

그들은 비어있는 무덤만 바라보고 다시 자기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마리아만이 다시 무덤을 찾았다. 마리아만이 무덤 앞에 남아있었다. 그녀는 무덤 안을 한 번 더 들여다본다.

그때 제자들이 보지 못한 광경이 펼쳐진다.

같은 현장이지만, 전혀 다른 광경이 나타난다.

제자들과 마리아는 무슨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차이는 바로 ‘갈망’에 있었다.

제자들은 흘깃보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지만 마리아는 “어느 누가 함부로 예수님의 시신에 손을 댔는가?"하는 사랑의 마음, 진정한 마음이 있었다.

마리아에게는 절실함이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본다. 누군가는 보지 못한다.
누군가는 듣는다. 누군가는 듣지 못한다.

그 차이는 바로 갈망이다.

갈망은 사랑의 또 다른 언어다. 사랑하는 자는 갈망한다. 사랑하는 자는 보고싶어한다. 안 보고 싶다면 사랑이 아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온라인 예배가 길어지고 있다. 같은 온라인 예배지만 갈망에 따라 전혀 다른 예배가 된다.

*토미 테니, 갈망 시리즈
“현 시대는 예배에 너무 익숙해졌다. 듣는 것에 익숙해졌다. 절실함이 사라졌다.”

-14-16절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지만 예수님인지 알아보지 못한다. 선입견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인간의 한계다.

그때 예수님께서 묻는다. “여자여...”
마리아는 동산지기인 줄 알고, 예수님의 시신이 있는 곳을 가르쳐달라고 한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마리아야.” 마리아가 답한다. “선생님!”

예수께서 “여자여”가 아닌 “마리아야”고 이름을 부르실 때,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본다.

예수께서 이름을 불러 주실 때, 인생이 달라진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던 삭개오...
예수님을 보기 위해 무화과 나무 위를 올라간다. 그때 예수께서 부르신다.

“삭개오야, 내려오거라.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이름을 부르신다.

오늘날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는 것, 음성을 듣는 것.

지금도 날 향한 주님의 음성이 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

17절: 마리아는 감격스러워 예수님을 붙잡으려 했을 것이다.

창기였던 마리아가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이 되었다.

제자들은 무덤 근처에 있다가 괜히 봉변 당할까 두려워 급히 떠났다. 갈망이 없었다. “누가 훔쳐갔나 보지. 얼른 떠나자.”

반면에 마리아는 다시 그 자리에 가서 울며 무덤 안을 살펴본다.

갈망이 있을 때, 부활의 첫 증인이 된다.

지금 나에게 갈망이 존재하는가?

나는 제자의 모습인가, 마리아의 모습인가?

갈망이 다른 결과를 만든다.
같은 장소, 다른 갈망, 다른 열매.

오늘 하루, 갈망하여 주님의 따듯한 음성을 듣고 언약 안에서 살아가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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