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니즘 시대의 철학과 기독교

윤휘종 윤휘종
작성일 2020-10-0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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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일반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과 기독교

헬레니즘 시대를 지배한 철학은 플라톤 철학도 아니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도 아니다. 바로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이다. 이 두 철학은 바울의 서신서에도 등장할 정도로 당시에 지배적인 철학이었다. 개역한글에는 스도이고, 에비구레오로 표기됐다. 물론, 두 학파는 오늘날에도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 그리고 기독교를 비교할 것이다. 본 비교를 통해 세상의 학문과는 구별되는 기독교의 고유한 진리가 약하게 나마 드러나길 바란다.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 그리고 기독교 사이의 공통된 키워드는 구원이다. 당시의 철학은 구원적 성격이 강했다. 당시 사람들은 모두 구원받고 싶어했고 이는 오늘날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셋은 모두 구원에서 차이가 있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원이란 목사님 말씀에 따르면, "무엇으로부터 건져내다"란 의미가 있다. 이 의미를 분석하면 세 가지 영역을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구원 받기 이전의 상태, 둘째는 구원 받은 후의 상태, 셋째는 구원을 얻는 방법이다. 스토아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 기독교 모두 세 가지 영역에서 차이를 보인다.

먼저 스토아 학파부터 알아보겠다. 스토아 학파는 로마의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당시 매우 부유한 상인이었던 세네카, 노예였던 에피테토스까지 전 신분과 계층을 가릴 것 없이 널리 퍼져있던 학파이다. 세네카와 예수님은 활동 시기가 겹친다. 금욕주의로 유명한 스토아 학파는 기독교와 매우 비슷한 부분이 많다. 이 자리에서 공통점을 다 서술하기는 어려우니, 이는 다른 글에서 다뤄 보도록 하겠다. 스토아 학파는 고통의 원인을 '쾌락의 매력'으로 본다. 쾌락이 바로 고통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쾌락은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다. 왜냐하면 만족은 일시적이고 금방 또 다시 쾌락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쾌락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다. 이들은 육체적 쾌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육체를 단련한다. 스토아 학파는 육체를 단련하면 이성이 강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세계에 있는 '이성적 질서Cosmos'에 자신의 이성이 맞춰지는 상황이 곧 구원이자 행복이라고 믿었다. 이를 위해 충동과 욕구가 아닌, 규칙에 따라 생활하고 평생에 걸쳐 인격을 수양하여 외부의 상황으로부터 독립하고자 노력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마음의 상태를 헬라어로 '아파테이아'라고 부른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육체적 고통이 불행의 원인이라고 보았다. 육체가 고통스러우면 마음도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들은 감각을 적절하게 만족시킨 쾌락이 행복이자 구원이라 믿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종종 '쾌락주의'라 불리는데, 이러한 말 때문에 많은 오해를 받는다.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그들은 방탕한 쾌락이 아닌, 그러니까 흥분된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평온한 상태 혹은 평화로운 마음의 상태를 추구했다. 극단적인 쾌락이 아니라, 고요한 상태를 추구한 것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속세로부터 떠나 마음이 맞는 몇몇의 친구들과 그룹을 이루어 살았다. 충분한 숙면 및 휴식을 취하며 정원을 가꾸는 것이 그들의 생활 방식이었다. 그들이 추구한 마음의 상태를 '아타락시아'라 부른다.

정리하자면, 스토아 학파는 쾌락을 불행의 원인으로 보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금욕적인 생활을 살았으며, 정념으로부터 해방된 상태를 구원이라 보았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고통을 불행의 원인으로 보았고,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속세를 떠나 정원을 가꾸는 등 여유로운 생활을 즐겼으며, (적절한) 쾌락을 구원이라 보았다.

반면에 기독교는 어떠한가? 기독교의 구원 받기 전의 상태는 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며 인간은 허물과 죄로 이미 죽었던 존재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인간은 죄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다.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는 학문의 내용에 차이가 있지만, 결국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것에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스스로 구원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은 얻는다. 구원을 얻는 방식이 두 철학과 기독교의 가장 본질적인 차이다.

은혜가 없다면, 은혜가 아니면, 기독교는 다른 철학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은혜가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다. 신앙 생활을 오래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은혜를 잊을 때가 너무나 많다. 많은 다짐을 해본다. 새벽기도, QT 등등. 내 노력, 내 의지, 내 결심으로 어려움을 벗어나고자 발버둥 칠 때가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은혜가 빠진 새벽기도, 듣는 마음이 없는 새벽기도는 수면을 줄이는 스토아 학파의 금욕 수련 중 하나에 불과할 수 있고, 은혜에 대한 갈망이 빠진, 듣는 마음이 빠진 Quiet Time은 묵상이 아닌, 에피쿠로스에도 있는 명상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은혜를 망각했다면, 더 이상 신앙인이 아닌, 철학자일 수 있다.

오직 은혜다. 오직 은혜로 구원받았고 은혜로 살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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