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5(월) 온라인 새벽예배

일반
작성자
윤휘종
작성일
2020-05-25 11:41
조회
1485
2020.05.25(월) 온라인 새벽예배
말씀: 요한복음 21장 1-14절

1절: “그 후에”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후, 마리아에게 한 번, 제자들에게 한 번, 도마에게 한 번, 총 3번 나타나신 후를 뜻한다.
14절에 4번이 아닌, 지금까지 3번이라 표기한 이유는 마리아를 빼고, 제자들을 기준으로는 3번째이기 때문이다.

2절: 최소 7명의 제자들이 현장에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처음 부르실 때, 앞으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부활을 경험한 그들은 앞으로 예수의 부활 사건을 어떻게 전할까하는 사명을 나눠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그들은 다시 물고기 잡는 과거로 돌아갔다.

3절: 베드로가 주동적으로 과거의 자신의 역할로 돌아갔다. 그들은 다시는 돌아가서는 안 되는 현장으로 갔다.

부활 사건을 경험한 그들은 앞으로의 사명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방향성을 잡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전혀 상관 없는 과거로 돌아갔다. 제자들의 회의론(Skepticism)이다.

예수님이 부활했지만 그들의 가슴을 채워주는 무엇이 없었다.
이것은 예수의 부활이 그들의 욕망을 채우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욕망으로 살든지, 사명으로 살든지 둘 중 하나에 의해서 살아간다.
욕망으로 살아가는가 혹은 사명으로 살아가는가?

예수님의 부활? 제자들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않는다면 제자들에게 큰 상관이 없었다. 제자들은 여전히 로마 이상의 제국을 꿈꾸고 있었다.

예수의 부활이 당신에게 무슨 의미인가? 욕망만 추구하여 당신의 삶 속에 예수의 부활이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못 하는 것은 아닌가?

7절: 과거에 자신을 부르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경험한 베드로가 제일 먼저 달려간다.

9절: 이미 예수께서 숯불과 생선 그리고 떡을 준비하셨다.

이 현장은 지금도 남아 있다. Mensa Christi (주님의 식탁)

부활 사건이 감동스러울지라도 제자들의 욕망을 채우지 못 했다. 제자들은 여전히 시큰둥하고 과거로 돌아갔다. 부활의 감동이 그들의 욕망을 이기지 못 했다.

승천하실 때 조차 “지금이 주님의 나라를 회복할 때입니까?”(지금이 제국을 건설할 때입니까?)라 물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신 후 그들의 삶은 달라진다.

예수를 믿는다. 십자가, 부활, 재림, 하나님의 자녀, 상속자 전부 안다.
그러나 가슴 한편에는 욕망이 있지는 않는가? 예수의 이름을 이용해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지는 않는가? 그리고 그것이 깨지면 절망하지는 않는가?

진정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통치, 주권 아래에서 오늘을 사는 것.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크리스천의 본질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거래하여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에 혈안되어 있지는 않는가?
그것이 간증인양 자랑할 때가 너무나 많다.

진정한 고백은 “내가 예수의 부활에 참여합니다. 그분의 이름을 증거합니다. 그분의 주권을 인정합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삶의 면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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