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8(월) 온라인 새벽예배

윤휘종 윤휘종
작성일 2020-05-18 11:59
조회 103
카테고리 일반
2020.05.18(월) 온라인 새벽예배
말씀: 요한복음 19장 38-42절

38절: “은휘하다” => “숨기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부자이고 산헤드린 공회원의 일원이었다. 니고데모도 마찬가지로 산헤드린 공회의 일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속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숨겨야 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이 산헤드린 공회에 발각이되면 큰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는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생이라”고 예수님을 높이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단호히 말씀하신다.

왜 그렇게 단호히 말씀하셨을까? 바로 니고데모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자신을 높일지라도 구원이 없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동창회에서 안 믿는 지인이 “당신은 좋은 크리스천이야, 당신의 교회도 좋은 교회야”라고 칭찬할 때, 고마워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나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믿고 심판에 이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숨어있던 제자 둘이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한다. 예수님이 어떠한 능력도 없고, 멸시와 천대를 받고 저주처럼 여겨지는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현장에 그들이 등장한다.

복음서는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드러내고 싶어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능력이 있으실 때, 격양되어있었다. 예수님을 메시야라 생각하고 환희와 감격에 차 있었다.

그러나 정작 십자가의 현장에는 어느 누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고, 요한은 마지막까지 산헤드린 공회와 거래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이익이 사라졌을 때, 예수님의 죽음만 남았을 때, 역사의 무대에 드러나는 인물은 이 둘과 여성 제자들이었다.

복음서는 이 둘을 진정한 제자로 조망하고 싶었다.

진정한 친구란 내 곁에 아무도 없을 때, 나에게 다가오는 유일한 사람이다.

예수님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때, 이 두 사람은 숨어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나서 나타난다.

결정적인 순간에 역사의 무대로 나와 예수님의 시신을 용기 있게 요구한다.

안식일이 다가와 시간이 없었다. 해가 지기 전에 신속히 준비해야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빈 무덤에 예수님을 모신다.

우리는 부활의 영광을 안다. 그런데 만약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았다”는 유대인의 생각을 갖고 있다면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교회가 어려울 때, 끝까지 공동체를 지키는 동역자가 있었다.

매 순간 하나님의 사람으로 한결같이 서 있으면 좋겠다.

이 두 사람은 이전까지는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를 두려워했지만, 지금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서 예수님의 장례를 치룬다.

버스 출발 직전에 탑승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마지막을 장식한다.

시간을 두고 미루면 이런 기회가 없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 기회는 예수님이 추앙받을 때가 아닌, 저주의 상징일 때 왔다.

요한은 이들을 “예수님의 제자”라 분명히 기록한다. 어쩌면 요한은 자신들이 아닌 이들을 진정한 제자로 드러내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열두 제자는 예수님이 낮아질 때, 외면하고 거부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철저히 자신을 희생한다.

“우리는 제자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아니구나....”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한결같이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 주어진 기회를 잃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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