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하나님의 최선입니다

일반
작성자
윤휘종
작성일
2020-06-08 16:21
조회
1592
2018년 그레이스 매거진 1호(겨울호) 칼럼 -윤휘종

일부 내용을 수정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최선입니다에 대한 철학적 근거

 

언젠가 부흥사경회에서 김덕신 목사님께서 다음의 말로 옆 사람과 인사를 나누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은 하나님의 최선입니다.” 이 말은 지금까지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현재 있는 모습 그대로 존귀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참 따듯한 말이다. 본 글에서는 “당신은 하나님의 최선입니다”라는 명제에 대한 철학적 근거를 들고자 한다.

현재 우리의 삶이 최선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이 필연적으로 지금의 모습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고, 이보다 나은 결과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라이프니츠가 분류한 ‘이성의 진리’와 ‘사실의 진리’의 구분을 알아야 한다. 이성의 진리는 “정사각형은 사각형이다”와 같은 것이다. 위 명제의 술어는 주어를 분석함에 의해 나옴으로써, 이것이 참임을 알기 위해서 더 나아간 경험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 명제는 선험적(a priori)이며, 이 명제를 부정하게 되면 모순에 빠지는 필연적 진리다. 라이프니츠는 이성의 진리의 진리성은 모순율에 기초한다고 보았다. 그러니까 이 명제를 부정하는 것은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사실의 진리’는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와 같은 것이다. 과학적으로 옳은 지식이지만, 위 명제는 그것을 부정해도 모순에 빠지는 모순율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술어는 주어를 분석함에 의해 나오지 않고, 더 나아간 경험, 관찰을 필요로 한다. 중세 시대만 해도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고 하면 화형에 처했고, 미래에 태양이 폭발할 수도 있다. 즉 필연적 진리가 아니다. 따라서 라이프니츠는 ‘사실의 진리’를 우연적 진리이며, 참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안다는 점에서 후험적(a posteriori) 지식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사실의 진리의 경우, 술어가 주어에 대한 모종의 정보를 제공한다. 그래서 라이프니츠는 ‘사실의 진리’는 어떤 것의 존재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궁금해지는 것은 존재와 관련된 진술은 전부 우연적일 수밖에 없는 ‘사실의 진리’인데 이것이 참인 이유는 어디에 기초하고 있는 것일까? 라이프니츠는 ‘사실의 진리’가 충족이유율에 기초한다고 본다. 라이프니츠는 어떤 것이 존재할 때, 그 존재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윤휘종은 은혜의 교회 동역자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이유가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라이프니츠는 존재의 이유만이 아니라 어떤 존재가 왜 그렇게 존재하는지에 대한 기초도 설명할 수 있는 길도 제시한다. 우리는 박정식 목사님이 미용사가 된 상황도 상상해볼 수 있다. 라이프니츠는 그러한 상황을 가능 세계라고 불렀다. (가능 세계는 올 수능 국어영역에도 출제되었으니 관심을 갖고 보면 좋겠다.) 우리는 수많은 가능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 사실 박정식 목사님이 은혜의 교회 담임목사인 것은 현실 세계이지만 그것은 매우 많은 ‘가능 세계들’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박정식 목사님이 은혜의 교회 담임목사가 되는 ‘가능 세계’가 다른 ‘가능 세계들’을 물리치고 현실 세계가 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라이프니츠는 여기서 완전성의 원리를 말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인간이 자신에게 가장 최상의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선택하도록 창조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현실 세계가 가장 나은 세계이며 완전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성의 진리’와 ‘실의 진리’에 대한 라이프니츠의 구분은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구분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모든 진리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미래의 세계가 어떻게 될 것을 다 알고 계신다. 불완전한 우리는 때로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며, 현재 삶에 대해 불평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 우연은 없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지나간 2018년의 모든 일에 감사하고 이끌어 가실 2019년을 기대함으로 준비하기 원한다. 다가올 2019년이 끝나는 순간이 올 때, “돌아보니 모든 것이 은혜였다”는 고백이 나오길 소망한다.

참고문헌: 박병철, 『쉽게 읽는 언어철학』(서광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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