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3(수) 온라인 새벽예배

일반
작성자
윤휘종
작성일
2020-05-13 12:44
조회
792
2020.05.13(수) 온라인 새벽예배
말씀: 요한복음 18:36b-19:11

메시야를 기다리는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죽이려는 장면이 본문에 등장한다.

말라기 이후 400년간의 침묵기동안 이스라엘은 이 제국, 저 제국의 속국이 되면서 메시야의 갈망이 커진다.

그러나 메시야에 대한 기다림은 민중에만 해당하지, 기득권층에는 해당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권력 때문에,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 메시야가 오게 되면 자신들의 권력이 사라질까 오히려 메시야를 거부했다.

38절: 빌라도는 자신과 다르게 썩을 유한한 권력을 추구하지 않는 예수님을 보면서 진리에 의한 권위와 압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39절: 그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거래를 시도한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거래가 아닌 예수님이 죄가 없다고 선언했어야 한다.

바야바가 강도이니 당연히 예수가 풀려날 것이라 생각하고 거래를 시도한다. 그러나 빌라도의 예상과는 다르게 군중은 예수님이 아닌 바야바를 풀어주길 원한다.

1-4절: 빌라도는 예수님을 고문하고 “이 정도면 되겠지?”라 생각하며 예수님으로부터 죄를 못 찾았다고 말한다.

그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군중의 여론을 의식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고문하고 “군중으로부터 그 정도면 충분해. 이제 풀어줘”란 말을 기대했을 것이다.

한 번 휘둘리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죄와 한 번 타협하면 우리는 전부를 잃는다.

올무에 걸리면 헤어날 길이 없다. 이것이 죄의 특성이다. 한 번 발을 디디면 점점 깊이 들어가 나중에는 빠져나올 수 없다. 마치 잼을 먹는 파리가 잼이 자신의 몸을 덮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도 못하게 끈적한 잼에 빠져 굳어버리듯이.

6-7: 그러나 군중심리는 더 잔인해져 간다.

교회는 다수결의 원칙인 민주주의가 아닌, 신정정치 즉 ‘하나님의 뜻에 맞는가’를 추구한다.

의는 그것을 따른 자의 수가 적다. ‘수’ 가 많다고 ‘의’는 아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추구해야 한다.

8절: 자기 마음에 중심이 없다.
정의도 진리도 없다. 권력을 추구하는 자는 철새처럼 저기 붙었다 여기 붙었다 이리 저리 왔다간다. 이익 추구만 있을 뿐이다.

8-10절: 그는 이 모든 것이 음모임을 느낀다. 자신이 이 사건에 휘말리면 안된다는 것을 직감한다. 예수님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자신의 힘으로 압박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자는 때로 고독하지만 자유하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다.  진리 안에서 판단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 휘둘리는 것은 내가 진리 위에 서 있지 않다는 증거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 말이 있다.

쑥덕거림, 카더라, 거짓 증언... 진리 안에 있지 않으면 미혹에 빠지고 유린 당한다.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한다. 
진리에 무릎 꿇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깊게 뿌리를 내린 나무는 바람에 휘둘리지 않는다.

사람들의 말이 아닌 진리를 따라가는 면모가 필요하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태도가 더욱 분명히 드러나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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