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

작성자
들풀
작성일
2019-11-24 06:48
조회
2473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던가.

 

사경회가 시작되었던 지난 주일 저녁, 그리고  어느 새 한 주가 지난

지금 이 시각 난 '뒷 북'이 아닌, '되새김'을 하고 있다.

방바닥 여기 저기 흩어져 구르는 구슬들을 하나씩 하나씩 주워모아 꿰는 그 시각의 뿌듯함처럼

주일 아침 난, 지난 사경회의 보배말씀을 꿰어보는 설레임을 갖는다.

 

첫 날 첫 시간.

나를 '탁'치는 정신 번쩍들게 하는 말씀을 꿰어본다.

'거울'이었다.

 

내가 자개가 박힌 외숙모화장대(외삼촌댁에 얹혀 살았다) 거울을 한참 디다보고 있으면

어릴 적 외할머니께서 그러셨다.

'나무양푼이 쇠양푼되냐'고.

참 못난 얼굴인데 어지간히도 들여다보는 내가 외할머니 보시기에 우스웠나보다. 물론 그 말씀엔 외솔녀(전라도방언)에 대한 징한 사랑이 담뿍 묻어있었음을 난 알고.

 

그렇게  이젠 어쩜 내가 그때의 우리 외할머니 나이가 되도록에

지금 껏

하루에도 수십번, 어쩜 셀 수 없이 들여다보는 거울.

길 지나다  주차되어있는 차의 그 흐미한 차체에 어리는 내 자신의 모습이라도 한번 디다보고,

쇼윈도우거울이면 꼭 흘려보고,

그렇게 이리저리 어찌어찌해서라도 내 모습을 보려

흘려보고 디다보는 이러저러한 거울들.

 

때로는 타인을 통해서도 나를 디다보기도 하는 '거울'.

 

그렇게 육체의 고움을 위해 디다보고 또 디다보며 가꾸고 매무새 고치기를 한 순간도 멈추지 않으면서

내 영을 살리는 '성경'은 얼마나 '디다보았'는가를 생각하는,

마음 속 거울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다.

 

생각되어졌다.

디다보고 깨닫고 또 행하고

그러다 또 망각하면

또 디다보는

외할머니 말씀의  '나무양푼이 쇠양푼'될 때까지

외할머니의 외솔녀를 향한 징한 사랑보다 더 징한 나를 향한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의  '성경말씀'을 디다보고 또

디다볼 것이고,

나를 통해 타인이 하나님을 보는 거울도 되어보리라는 참으로, 지극히 참말로, 너무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리되어보리라는 마음도 갖어본다.

 

첫 날 첫 시간을 대하며

집에 가서 '첫찌'로 써야지 했던 '은혜'의 나눔을 어쩜 마지막으로 쓰는 게으른 종이 되었으나

'그래도 구슬을 꿰었으니 참 좋다'.

 

이제 글을 마치고

천국의 맛을 보는 시간. 하나님과 입맞춤을 하는 달콤한...그런 시간을 위해 교회 갈 준비를 해야겠다.

 

덧말-권사님.

게으르지 않을께요...

.

.

귀한 '은혜 나눔터'에서 누린

행복한, 설레임의 주일아침의 기쁨이었습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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