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직성척추염 환자입니다.

일반
작성자
윤휘종
작성일
2020-06-05 12:05
조회
2393
2020.06.05(금) 강직성척추염 환자의 삶

나는 강직성척추염 환자다. 강직성척추염이란 류마티스 내과에 속하는 희귀성 난치병으로, 면역체계가 오류를 일으켜 정상적인, 건강한 몸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주로 80%이상, 골반 관절을 공격하며, 그 공격으로 인하여, 뼈마디에 염증이 생기고, 시간이 흐를수록 염증이 굳어가, 결국 관절이 대나무처럼 붙어버린다. 관절이 굳어버리면 당연히 관절을 움직일 수 없다. 강직은 골반부터 시작하여 목까지 진행된다. 그렇게 될 경우, 허리와 목이 완전히 굽어져 스스로의 힘으로는 일평생 하늘을 볼 수 없다. 관절의 강직이 진행된 경우, 수술로도 회복되기 힘든 병이다.


이 병의 근본 치료법은 없다. 만성질환이다. 왜냐하면 몸이 왜 멀쩡한 몸을 공격하는지도 밝혀진 바가 없고, 그 공격을 막을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염증 수치를 낮추는 약을 계속 복용하는 수밖에 없다. 보통 40대 이후로 호로몬이 바뀌어 공격이 멈추는 경우도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 경우에 해당하지는 않다. 50대, 60대에서도 병이 진행되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이 병의 원인은 유전자라고 한다. 강직성척추염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유전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병의 원인을 유전이라 규정한다면, 그것은 병의 원인을 모른다는 말과 같다. 왜냐하면 유전자가 원인이라고 하면, 그 유전자를 갖고 있는 모든 사람은 그 병에 걸려야 하는데, 그 유전자가 있다고 해서 그 병에 무조건 걸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유전자가 그 병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대부분 이 유전자를 갖고 있다. 정리하자면, 유전자는 강직성척추염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이 병을 갖고 있는 유명인으로는, 고민정 현 국회의원(21대)의 남편 조기영 시인, 중국 배우 주걸륜, 개그맨 김시덕, 람세스 2세, 세종대왕(추정)이 알려져 있다. 추가로 나는 사도 바울도 강직성척추염을 앓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왜냐하면 강직성척추염은 합병증으로 포도막염을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사도 바울은 허리가 굽었다고 하고, 몸 안의 가시를 호소했으며, 시력이 매우 나빴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강직성척추염 환자의 전형적인 증세이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이 질환을 앓았다. 그러나 그때는 강직성척추염인줄 모르고, 엉뚱한 물리치료만 받았다. 그러다가 21살 군 입대를 앞두고 중노동을 하다가 허리가 너무 아파서 그곳에서 짤리게 된 후, 병원을 찾아갔는데, 병원에서 강직성척추염을 진단받았다. 강직성척추염을 진단받고, 병무청에서 재검 통지를 받은 후, 7개월 후 재검 결과 군 면제를 판정 받았다.


나는 감사하게도 병을 초기에 발견하여 비록 골반이 조금 녹았지만(골미란 현상), 강직이 진행되지 않아, 염증을 없애는 약물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강직성척추염 환자의 특징은 이미 강직이 한참 진행된 후, 늦게 검사를 받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강직성척추염이란 병이 흔하지도 않고, 대부분 허리디스크인줄 알고 잘못된 치료를 받고, 무엇보다 이 병이 가만히 누워있으면 아픈데, 움직이면 또 괜찮아지기 때문이다. 이 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누워 있는 동안, 몸이 염증으로 인해 뻣뻣해져 가지만, 몸을 움직이면 근육이 풀어져 다시 정상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아침에 고통을 호소하다가 어쩔 수 없이 등교 혹은 출근을 해야 하니까 아픈 몸을 이끌고 밖에 나가고, 나가서 생활하다 보면 막상 괜찮아져서 정밀 검사를 안 받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이 병이 오랜시간 진행되기 전까지 이 병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모르는 동안 몸은 서서히 굳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도 고2부터 21살까지 그런 생활을 했다.


강직성척추염은 나의 자부심을 앗아갔다. 지금은 조금 우습게 들리지만 학창시절 나의 자부심은 축구에 있었다. 친구들은 나랑 같은 팀을 하면 좋아했고, 친구들은 그들끼리 축구 제일 잘하는 사람을 논할 때 나를 항상 1순위, 2순위로 놓고 다퉜다. 고1때까지 그랬다. 그러나 고2가 된 후, 골반에 염증이 생기자 나는 정상적으로 운동을 할 수가 없었다. 송곳으로 골반을 찌르는 듯한 아픔이 찾아왔고, 그로 인해 절뚝거리며, 혹은 다리를 질질 끌며 걸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태로는 축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운동장에서 나는 점점 잊혀져 갔다.


강직성척추염 환자는 다른 환자들이 받는 배려를 얻을 수 없다. 일단 허리 통증은 겉으로 보이지 않다. 나는 무거운 것을 들어달라는 동역자들의 부탁을 거절하며 때로는 뺀질댄다는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겉만 보아서는 멀쩡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아파서가 아니라, 귀찮아서 거절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또한, 움직일수록 괜찮아지는 이 병의 특징 때문에, 내가 병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 나는 전혀 아픈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실상은 항상 안 아픈 것이 아니라, 괜찮다가도 어느날 문득 갑자기 고통이 찾아올 때가 있고,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으며, 오랜시간 앉아있다가 일어서려면 허리가 굽어져 다시 피기까지 몇 분이 걸린다. 뿐만 아니라 독한 약으로 인해 어지러움, 구역질, 구토를 겪기 십상이다.


그러나 나는 강직성척추염을 축복이라 생각한다. 강직성척추염은 성실함이란 인생의 도전으로부터 나를 더욱 승리하게 도와준다. 강직이 진행되지 않는 초기의 강직성척추염 환자는 본인의 의지에 따라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심지어 더 건강해질 수 있다. 강직성척추염은 자기관리의 싸움이다. 왜냐하면 강직성척추염은 스트레칭과 가벼운 운동을 꾸준히 할수록 몸이 호전되는 질환이기 때문이다. 치료법은 운동이 70%, 약물이 30%이다. 따라서 매일 스트레칭과 가벼운 운동을 한다면 오히려 병이 없는 사람보다 더 건강하게 생활할 수도 있다. 귀찮아서 스트레칭을 소홀히 하거나 운동을 빼먹으면 강직성척추염은 무섭게 나를 다그친다. 골반에 고통을 줘서 다시 성실히 스트레칭과 가벼운 운동을 할 것을 명한다. 예전에 목사님께서 해주신 이야기가 생각난다. 물고기를 싣고 장거리를 이동할 때, 물고기끼리만 있으면 물고기는 대부분 죽는다. 그러나 어항에 천적인 뱀장어를 풀면 대부분의 물고기가 이동 후에도 살아 있다. 나에겐 강직성척추염이 뱀장어 같은 존재다. 마음이 풀어지지 않고 항상 긴장을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강직성척추염은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다. 몸이 아프고 나니, 이전에 몰랐지만, 나보다 더한 고통을 겪고 계신 분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그분들이 겪는 고충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병을 얻고 나니, 전에는 안 보이던 것들이 아주 조금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강직성척추염을 앓기 전에는 사회복무요원이나 면제를 받은 사람들을 우습게 여겼다. '남자라면 군대는 당연히 가야지'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잘못된 생각이었다. 사회복무요원 혹은 면제를 이유 없이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그만큼 몸이 아프기 때문에 그러한 판정을 받은 것이다. 아픈 게 무슨 죄인가? 이유 없이 아픈 사람들을 사회에서 죄인 취급한다면 얼마나 그것이 악한가? 어느 누가 남의 고통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있겠는가? 타인의 고통을 대신 짊어질 수 있는 아무도 사람은 없으므로,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다. 나에게도 종종 "남자면 군대를 가야지. 아파서 좋겠다. 신의 아들이네"라는 말이 들려온다. 처음에는 분노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해한다. 왜냐하면 나도 아프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직성척추염은 나보다 더 아픈 분들을 이해하도록, 그리고 내가 게을러질까봐, 나태해질까봐, 교만해질까봐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하루 하루 겸비하며 기도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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