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이유

일반
작성자
윤휘종
작성일
2020-08-19 21:44
조회
785
존재의 이유

“왜 무엇이 없지 않고 있는가?” 서양철학의 주요 물음이다. 이것을 탐구하는 것이 존재론(ontology)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의 이유를 네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는 질료인, 둘째는 형상인, 셋째는 작용인, 넷째는 목적인이다. 예를 들어 내 앞에 컵이 하나 있다고 가정하자. 컵의 질료는 유리 혹은 플라스틱일 것이다. 형상인은 컵의 모양이다. 작용인은 컵을 만든 사람의 의지일 것이다. 목적인은 커피나 차를 마시기 위함일 것이다.

인간의 존재의 이유는 무엇일까? 기독교의 관점에서 남자의 질료는 흙이고 여자의 질료는 갈비뼈다. 형상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작용은 하나님의 호흡이다. 목적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나를 통해 누군가가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다.

당신의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가? 대부분 목적인에 답을 하지 못해 방황할 때가 많다.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다음 세대에게 정말 중요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공교육이 줄 수 없다. 왜냐하면 공교육의 목적은 ‘말 잘 듣는 노동자 만들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석이 가장 중요하다. 왜라고 물으면 안 되고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음 세대는 방황한다. 오직 성적이라는 획일화된 기준으로 자신의 가치가 매겨지기 때문이다. 개인의 인격과 달란트는 무시된다. 줄 세우기만 있을 뿐이다. 국영수 성적이 높은 아이는 인정받고 낮은 아이는 인정받지 못한다. 그에 따라 다음 세대는 열등감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안타깝게도 부모 또한 세상의 기준에 따라 자녀를 양육한다. “학생 때는 공부가 제일 중요하다. 신앙은 대학 때 생겨도 늦지 않다.”  공부와 아무 상관 없는 아이에게 엄청난 사교육비를 지출한다. 내 자식이 옆집 자녀에게 뒤쳐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학원에 간 자녀는 오늘도 학원에서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다가 집에 돌아온다. 그렇게 겨우 대학에 들어가서는 어떨까? 대학 간판이 가장 중요하다며 적성과는 아무 상관 없는 전공을 선택하고 또 그렇게 1년을 날린다. 결국 남들이 다 준비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학창시절의 사교육비, 대학 등록금, 공무원 학원비... 이렇게 어마한 물질이 낭비되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문제는 물질이 아니라 아이들의 정체성이다. 학창시절에 성적만이 가장 중요하다고 교육받은 아이가 신앙인의 정체성을 세울 수 있을까? 지금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신앙이 뒤로 미뤄져 있다면, 나중이 되도 신앙은 미뤄져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만이 있고 미래는 허상이기 때문이다.

아무 목적 없이 학창 시절을 보낸 다음 세대는 끊임 없는 남과의 비교, 그리고 그것에서 오는 열등감을 던져버리기 힘들다. 왜냐하면 모든 비교는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이란 말은 영어로 ‘relative’인데 ‘relative’는 ‘in relation’에서 유래한다. 즉 상대적이란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절대적인 가치를 심어줘야 한다. ‘절대적’은 ‘상대적’과 반대로 비교불가능하다. 절대적인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은혜는 이 세상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나중으로 미뤄서도, 미룰수도 없는 것이다. 다음 세대에게 자신의 가치는 예수 보혈의 가치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우리의 가치는 예수 보혈의 가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위해 예수의 보혈을 대가로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진 다음 세대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자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다. 정체성을 바로 세운다면, 진로로 인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더 이상 무엇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아의 기준이 외부, 세상의 칭찬에 있는 사람은 휘둘린다. 왜냐하면 세상이 인정하는 직책에 오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진 자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이다. 그런 자에게 목적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를 바탕으로 어떻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가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공교육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신앙교육은 남아있기 때문이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