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기념 투고] 평생의 스승께서 가르쳐주신 지혜

일반
작성자
윤휘종
작성일
2020-05-15 19:30
조회
1230
2020.05.15(금) 평생의 스승께서 가르쳐주신 지혜

목사님의 말씀을 들을 때면 목사님께서는 다른 사람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목사님께서 내게 가르쳐주신 지혜도 마찬가지다.

내가 목사님으로부터 배운 지혜는 바로 '듣는 마음'이다. 세상으로부터는 '듣는 마음'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철학을 전공하고 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자주 느끼는 것은 그들의 마음에 '듣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대화의 중심이 될 때가 많은데, 그들은 여러 신학자들의 이론을 근거로 주일성수, 십일조 등과 관련하여 한국교회를 비판한다.

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섬뜩할 때가 많다. 바로 나도 그러한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information'은 많은데, 그것이 그들을 'deformation'으로 만든다. 그들로부터 겸비함을 찾을 수 없다. 물론, 그들의 말이 다 틀린 것은 아니다. 분명 옳은 내용도 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옳은 것이 전부 옳은 것만은 아니다. 사실일지라도, 타인을 아프게 하거나 공동체를 흔드는 말은 옳다고 할 수가 없다.

이것은 단지 내 주변 사람들의 특징만은 아닌 것 같다. SNS의 발달로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손 쉽게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말과 글이 난무하는 시대다. 그러나 말과 글이 많아질수록, 사랑과 포용이 아닌, 비난과 정죄가 더 많아지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이 아니라, 부족한 점만 찾아내서 깎아내리기 바쁘다. 상대방에 대한 비난의 이면에는 기본적으로 '자기 의'가 깔려있다. "너는 틀리고, 나는 옳다. 나는 이러한 고상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뽐내는 의식이 근저에 놓여있다.

나도 그러한 충동을 느낄 때가 많다. 대학원에서 철학을 배울수록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비판하고 나의 생각을 알려주고 싶을 때가 너무나 많다. 그럴때마다 고개를 숙이기 위해 노력한다. 무슨 말을 하고 싶거나 글을 쓰고 싶을 때 스스로 생각한다. "나는 이 글을 왜 쓰려고 하는가. 남을 비판하고 내가 높아지기 위해서인가. 나의 말과 글을 통해 내가 높아지나, 혹은 다른 사람이 높아지나.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인가, 사랑을 주는 말인가." 스스로를 점검하려 시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 순간 넘어질 때가 많다.

세상은 정죄하려고만 한다. 자신의 지식을 높이려고만 한다. 자기 말밖에 없다. 들려오는 말씀이 없다. 그런 태도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다. 듣는 마음 없이는 하나님께 순복할 수가 없다. 말씀 앞에 인생의 방향을 전환할 수가 없다. 말씀 앞에 무릎 꿇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 말로 가득찬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올 틈이 없다.

진정한 실력은 타인의 백가지 잘못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한 가지 장점을 배우는 것이다. 목사님께로부터 '듣는 마음'을 배우지 못했다면, 나는 여러 세상 사람들처럼 고상한 지식을 가지고 남을 비난하고 정죄하며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기 바빴을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로부터 박수는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의 내면은 괴물이 되어 있을 것이다.

수능을 마친 뒤, 목사님과 동기들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내가 밥을 받으러 지나가고 있을 때,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철학을 제대로 배우면 신앙이 깊어지는데, 잘못 배우면 신앙이 망가진다." 목사님께서 말씀하는 '철학을 잘못 배운다는 것'은 어떤 '왜곡된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겸비함 없이 지식을 습득하는 태도'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 어떠한 세상의 고상한 지식보다 가장 지혜로운 '듣는 마음'을 가르쳐주신 목사님께 감사하다. 나이가 먹어가도 목사님께서 가르쳐주신 지혜를 잊지 않고 항상 자기를 반추하여 노년이 되어서도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유식한 사람, 똑똑한 사람'이 아닌, '듣는 사람'으로 기억되길 소망해본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