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1(월) 온라인 새벽예배

일반
작성자
윤휘종
작성일
2020-05-11 12:37
조회
604
2020.05.11(월) 온라인 새벽예배
말씀: 요한복음 18장 19-27절

예수님께서 산헤드린 공회에게 재판받는 모습이 나온다.

안나스는 대제사장 출신이고, 예수님이 고문 당할 때 현직 대제사장은 가야바였다. 가야바는 안나스의 사위로서 당시 산헤드린 공회가 직위를 세습하던 것을 알 수 있다.

19-21절: 그들은 진리를 왜곡할 마음으로 가득했기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자세히 말할 필요가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은밀히 말씀하신 것이 없었고 바리새인들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들이 나사로의 집에 첩자를 보냈을 때, 일부는 돌아서서 믿음을 가지기도 했다.

22절: 예수님의 말 앞에 그들이 할 말이 없으니까 때리는 것이다.

사람 사이에는 인격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그들이 과격해진 이유는 진리의 말씀이 그들의 잘못을 밝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23절: 예수님께서는 거세게 저항하시지 않고 계속 진리를 말씀하신다.

진리는 힘으로 압박하지 않는다.
빛은 요란하지 않는다.
빛은 잠잠히 온 구석을 비춘다.
그 빛을 막으려면 요란법석을 떨어야 한다.

세상은 예수께서 잘못했기에 맞는다고 오판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옳아서가 아니라, 진리를 두려워 해서 그렇게 거칠게 반응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왜 온유하게 반응하실까? 당신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24절: 안나스가 가야바에게 예수님을 보내어 본격적인 재판이 진행되다.

25절: 베드로의 두 번째 부인.
26-27절: 베드로의 세 번째 부인.

27절에 요한은 “부인하니”라고만 적었지만, 마태, 마가는 한 단어를 추가한다. 

“저주하여 부인하니”
하나님의 이름으로 매도했다는 뜻이다.

요한은 유다에게 거침없는 평가를 내린 반면에, 왜 베드로에게는 상대적으로 온건하게 서술했을까?

아마도 베드로로부터 자신의 모습이 비춰졌기 때문일 것이다.

본인도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동료였다.

베드로에겐 열심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에게 녹록치 않았다.
대단한 군중이 아닌, 여종의 말에 넘어진다.
주님은 다 아셨다.

우리의 힘으로는 예수님을 사랑할 수 없다.

우리는 약하다.  그러나 주께서 용서하시기에 우리가 여기에 서 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을 용납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도 똑같은 사람이기에. 

은혜로 산다.
은혜 아니면 여지없이 무너진다.

쉽게 원망한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쉽게 비교한다. “왜 나는 저렇게 행복하지 않을까?” “저 사람은 함부로 사는데 왜 나보다 행복할까?”

우리의 오만이다. 

요21:18-22
베드로가 죽음으로 영광 돌릴 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요한은 어떻게 되는가”고 묻는다. 
이에 예수님은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답하신다. 

신앙은 누군가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만 바라보는 것이다. 

비교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감사하고, 주님을 더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이 신앙인의 면모다. 

대제사장의 기도를 기억하고 절대적으로 감사하는 것이 기도의 정석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6-7

나를 너무나 잘 아시는 주님께, 한계가 있지만 은혜로 말미암아 감사의 고백으로 하루를 시작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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