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된 나의 메시아..

작성자
임형수
작성일
2022-05-09 15:38
조회
535
계절의 여왕 5월이 시작됨과 동시에 그에 잘 어우러지게 만왕의 왕이시며 약속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시작으로 마태복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구약과 신약성경의 처음인 창세기나 마태복음을 시작으로 매년 새해가 되면 한 번쯤은 성경통독을 다짐하면서 읽다가 그만 둔 경험이 있기에 마치 몇 번은 묵상해 본 듯한 낯익은 말씀들이 간간이 눈에 들어오기에 자칫 잘 못 하면 자만해 질 법도 한 성경의 일부입니다

아니다 다를까 첫째 날 하나님의 말씀부터...

누가 누구를 낳고.. 낳고.. 낳고.. 이미 수없이 장표를 넘겨보았던 터라 너무나도 잘 안다고 생각되는 부분입니다..

거만한 마음과 구태의연한 마음이 말씀 묵상 시작 전부터 마귀의 유혹에 흔들리기 시작하는 모양새입니다

어쩌면 읽는 것이 지루해서거나 별로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는 고리타분한 생각에 읽고 묵상하기를 간과하고 생략했던 기억입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절대로 성령께서 그냥 간과하시기를 보고 만 계시지 않는 것 같은 마음입니다

목사님 말씀 묵상을 통해서 너무나도 귀하고 소중한 말씀이 성령께서 만져 주심으로 마음 깊숙한 곳까지 전해져 왔습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아담의 계보를 보면 죽었다.. 라고 기록되어져 있는 반면에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계보는 낳았다로 기록되어져 있다는 말씀에 귀를 쫑긋 열어주시며 끌리는 마음을 허락하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의 결국 죽음이라는 실패로 영원한 죽음에 처 할 수 밖 에 없었던 우리가 존귀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다는 사실..

믿음의 가문이 자녀를 낳는 것은 단순한 자손을 이어 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낳고 이어간다는 사실..

영원한 죽음을 향해 달려가던 저를 살리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향한 감사가 절로 고백되어지는 순간이었으며 더불어 세상에 소망을 두어 죽어가던 저의 가정을 믿음의 가정으로 세우셔서 다음 세대까지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의 계보를 이어 갈 수 있도록 허락하신 주님의 택정하심과 부르심에 예배와 찬양을 올려 드리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둘째 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시는 목사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거룩한 계보에 참여 할 수 있었던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의로움을 통해서 여전히 제 안에 더럽고 추한 죄성을 한 아름 안고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내가 항상 생각하는 의로움이란 누군가의 잘못을 심판하고 정죄하고 비난하고 판단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공의는 심판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죄를 미워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말씀에서 아직 영안이 뜨이지 못한 저로서는 여전히 죄를 미워하기보다는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완악한 죄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실을 자각하게 하십니다

요셉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선택 받고 참여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의 성품과 긍휼을 닮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말씀에 저 또한 십자가의 보혈로써 여전히 제 마음 깊은 곳에 뿌리 박혀 숨어 은둔하고 있는 죄성을 정결하게 하여 주시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진정한 의로움은 주님의 말씀을 깨닫는데서 시작하여 사람을 사랑하고 긍휼을 베푸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셋째 날 말씀을 묵상하면서는..

메시아의 탄생소식(복음)이 예루살렘 전역에 퍼지게 됨으로써 지식에 능통한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그들의 기득권과 권세를 잃을까 두려워하여 복음을 기뻐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주님께서 오늘 저에게 주시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매일 마주하는 세상 가운데 저의 모습 또한 어쩌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같은 마음이 감추어져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고 성찰하게 하십니다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그 자그마한 가짐과 소유마저도 바둥바둥 지키려고 애쓰는 비움과는 전혀 상관없는 모습으로..

한 움큼 쥐고서 절대 손을 펼치지 않으려는 나눔과는 전혀 상반된 모습을 투영시켜 주심으로 인해 두려움에 에워 쌓여 기쁨을 상실 한 채 살아가는 저의 모습이 전혀 그들과 다를 바 없음을 보게 하십니다

분명 복음이 제 마음에 임했습니다..

주님이 제 안에 계셔서 항상 저와 함께 동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은혜가 제 마음 가운데 임한 오늘 과연 저의 진정한 기쁨과 감격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지 주님께서 묻고 계지시만... 그저 받을 은혜와 사랑만 마음과 입술로 계수하고 바라고 있으니 그저 송구한 마음뿐임을 고백하고야 말았습니다..

제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온전한 기쁨으로 삶 가운데 주님을 예배하며 찬양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임마누엘 하나님! ”

넷째 날 말씀 묵상 가운데 임마누엘 하나님이심이 제 마음에 심쿵 하면서 들어왔습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이해하기 전까지 그 의미는 단순히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태어나실 때부터 죽음과 고난을 경험하셨고 심지어 나중에는 제자들에게 배신까지 당하시는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모든 고난과 고통을 경험하셨음을 그 제서야 가슴 깊이 묵상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더 흘렀을까? 더 깊은 묵상으로 이어지는 순간엔 고스란히 고통과 고난당하신 주님의 마음이 제 마음 가운데 임하게 되면서 더욱 더 깊고 진한 의미를 부여 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주셨습니다

어느새 제 눈가엔 죄송함의 눈물이.. 감사함의 눈물이 뒤섞여 흐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완전한 인간으로 태어나셔서 고난과 죽음으로부터 제외되지 않으시고 인생의 생과 죽음 모든 것을 경험하시며 우리의 인생 가운데 함께하신 임마누엘 하나님!

그렇기에 지금 제가 처한 고난과 아픔과 슬픔을 그냥 바라만 보고 계신 것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 더 가까이서 잘 아시고 항상 함께 하고 계시는 임마누엘 하나님!

결국 그 끝은 고난 가운데서도 다시 살아나심으로 인해서 악을 통제하시고 선으로 바꾸셔서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주셨기에 오늘 저의 삶도 비록 아픔과 슬픔 가운데 처할지라도 신실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땅만 바라보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소망을 품고 임마누엘 하나님과 함께 꿈꾸는 자 되게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앙망합니다

 

“ 낮아짐의 역설! ”

다섯째 날 말씀을 묵상하면서 철없는 제 모습을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는가?

했을 정도로 선한 것 하나 없는 곳에서 왜 주님은 천하고 비천한 나사렛 예수가 될 수 밖 에 없었던 걸까?

그렇게 주님께서는 비천한 나사렛 사람이 되어야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온갖 천대와 멸시를 받을 수 있었으며 고난 받는 메시아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 말씀 하시기에 먹먹한 마음이 더 깊게 다가오는 모양새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그래서 우리를 구원 할 수 있는 방법이 오직 유일한 비천하고 낮아지는 삶을 사셔야만 했기 때문에 가장 낮고 낮은 모습으로 찾아 올 수밖에 없으셨음을 비로소 깨닫고 철없었던 마음을 회개 할 수 있게하셨습니다

단순히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함으로만 생각했던 나사렛 예수..

주님 마음도 모르고 철없이 구원 받은 것에만 기뻐하고 그 은혜를 값없이 주신 것이라고 마음껏 누렸왔던 나..

결단코 내가 받은 은혜는 값없이 주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회한의 눈물을 주님께 바칩니다

주님!

철없었던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비록 이 세상 가운데 온갖 천대와 멸시와 고난 가운데서도 결국 십자가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처럼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나사렛과 같은 비천한 오늘의 현실이지만 주님의 존귀한 자녀가 된 지금..

제 앞에 어둡고 힘든 상황의 현실이 놓여 있더라도 결단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라는 사실을 절대 무너트리지 못함을 깨닫게 하시고 하늘이 저의 소유가 되었음에 기뻐하며 감격으로 살아가는 존귀한 자녀 되게 하여 주옵소서~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

여섯째 날 말씀을 묵상하면서 진정한 회개의 의미를 부여 받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스려지는 나라이기 때문에 회개해야만 한다는 말씀을 통해 주님이 오시면서 저의 마음에 이미 천국이 도래했음을 깨닫고 있으나 아직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죄를 보는 마음이 있어야하며 늘 영적으로 깨어 있어 철저히 회개해야 함을 알고 있으나 항상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고 외치며 눈물로만 회개하고 있지는 않는지 성찰하게 됩니다

목사님께서 회개는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되면 죽는 길이 있고 사는 길이 있는데 회개는 반드시 살게 되는 길.. 영원한 생명의 길이라고 하십니다

또한 회개는 인간의 길을 걷다가 잘못 된 것을 성령께서 주신 말씀을 통해 깨닫고 삶의 방향을 주의 길로 바꾸는 것..

나의 고집, 생각, 의지, 신념을 내려놓고 내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방향으로 유턴하는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진정한 회개를 통해서만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 질 것을 알기에..

오늘도 흘러가는 시간(크로노스)과 하나님이 예정한 시간(카이로스)이 서로 교차되어 제 삶의 역사 가운데 개입하셔서 하나님의 통치와 역사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제 삶 가운데 직접 개입하시고 역사하시는 그 때.. 바로 그 때..

철저하게 삶의 방향을 주님의 길로 전환하고 회개하여 삶 가운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진정한 회개를 통해 구원을 확신하며 새로운 영이 항상 깨어 있어 날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주장하심에 즉각적인 반응으로 순종하며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목사님 말씀 가운데 불쑥불쑥 원로 목사님을 떠오르게 하시는 말씀이 흘러 나와서 눈물을 글썽인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라 .. 오늘은 나.. 내일은 너..”

“크로노스.. 카이로스..”

사랑하는 박정식 목사님 말씀 가운데 자주 사용하시던 말씀이었기에 듣는 순간 심쿵 하면서도 몹시 그립기도 하였습니다

예전의 설교 말씀과 찬양, 기도 하시는 모습을 하루에 한편 정도 되돌려 보면서 묵상하고 추억하고 있기에 더욱 더 그리움이 짙어져 가는 것만 같습니다..

너무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원로목사님 소천하심에 슬픔을 극복하시려는 모습이 때때로 엿보이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예배와 주일예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리에서 주어진 말씀 사역을 감당하시고 헌신하는 목사님!

그 모습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아름답게 보여집니다

철저한 사전 준비를 통해 말씀에 숨겨진 깊은 의미까지 전해주시기에 감추어져 있던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니 깊은 감사드립니다

한편으로는 정교한 설교 준비에 애쓰시느라 마음 한 켠에는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시는 건 아닌지..

힘겨워 하시는 건 아닌지..

걱정 어린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항상 목사님 건강을 위해 중보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모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항상 예배 마지막을 따뜻한 미소와 사랑으로 배웅해주시는 모습에 진심으로 깊은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사모님의 건강과 주님의 위로가 항상 함께 머무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전체 1

  • 2022-05-10 21:03

    우리 목사님께서 힘들지만 행복하실듯 싶네요.
    이토록 말씀에 깊이 은혜받는 집사님이 계셔서요.
    저도 새벽에 기도하고 나오면서
    목사님의 기도하는 뒷모습을 보고
    가슴이 뭉클하면서 ...
    눈물이 핑 ~ 돌더라구요.
    너무 힘드실텐데... 너무 무리하시면 안 되는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요.
    우리 동역자들이 이토록 목사님의 건강을 걱정하고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아신다면
    힘든 상황에서도
    큰 힘과 위로를 얻으실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