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부흥사경회 제10과 <무엇을 하든지> 말씀 요약

윤휘종 윤휘종
작성일 2020-11-21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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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일반
2020부흥사경회 11/18(수) 저녁 제10과 <무엇을 하든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우리는 위의 말씀을 다 안다. 그러나 대충 안다. 대충 안다는 것은 모른다는 뜻이다. 적용하지 않기에 모르는 것이다.

말씀을 들어도 삶이 달라지지 않는 이유: 피상적, 추상적으로 말씀을 안다. 피상적: 본질을 모름. 추상적: 단지 이론, 관념뿐이고 경험하지 못함. 신앙은 이론이 아니다. 경험하기 위해서는 순종해야 한다.

타인의 상처, 중심, 소원, 아픔을 안다면, 타인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 사람의 중심을 알게 되면 나도 그 사람의 아픔에 동참하게 된다. 중보한다.

바울은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피상적, 추상적일 때 믿는 자를 박해했다. “내가 무지했기에...” 그러나 예수님을 경험한 후, 그는 복음을 전하는 데 목숨을 바친다.

바울이 가시에 대한 지식이 피상적, 추상적일 때, 가시를 없애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가시의 본질을 알게 된 후, 약한 것을 자랑하게 된다.

➀본문 말씀은 고린도 교회의 문제 해결을 위한 편지. 문제와 해결책 모두가 담겨있다.

➁“그런즉”: 앞의 내용이 뒤의 내용의 이유. ~하기 때문에 ~하라.

➂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에 적용되는 원리. 이것을 모르면 모든 일을 위의 원리 없이 행하게 된다.

*앞의 내용

원칙: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10:23-24)

=>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자유는 영적 원리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영적 원리란 타인의 유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행해야 한다.

예시: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고전10:25-28)

=> 위의 원칙에 대한 예시다. 바울은 두 개의 정답을 제시한다. 이것은 상황에 따라 행동하라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상대방의 유익에 맞춰서 행동하라는 것이다.

신앙은 경험이 아니다. 신앙은 습관이 아니다. 신앙은 오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반문

“이 경우 그 고기에 대한 여러분의 판단보다는 그 사람의 생각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왜 내가 다른 사람의 생각에 끌려가거나 제약을 받아야 합니까? 내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먹을 수 있다면 어떤 사람이 나를 나쁘게 생각한다고 해도 그의 비위를 맞출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하고 물을 것입니다.”(현대어 고전10:29-30)

=>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다. 내가 죄도 아닌데, 왜 제약을 받아야 하나?
  • 이 모든 배경에 근거하여 다음을 말씀을 설명해 보시오.
“자 그러면 내가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또 어떤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현대어 고전10:31)

=> 하나님의 영광은 형제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 형제를 실족시키지 않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공동체에서 다툴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 말한다. 그만큼 말씀을 추상적으로 알고 있다는 방증이다. 다툼이란 자기 유익을 구하는 것이고 전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한다.

또 다른 예시: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고전11:22)

=> 부유한 자가 가난한 자를 배려하지 않고, 자기 먹을 것을 자기만 먹었다. 이웃을 부끄럽게 했다.

은사에 대한 적용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7)

=> 은사의 목적은 공동체의 유익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고전13:4-5)

=> 모든 은사의 원동력은 사랑이어야 한다. 사랑 없는 은사는 상대방에, 공동체에 유익이 되지 않는다. 자기 유익을 구하는 은사는 자랑이고 교만이다.

구약: 경외로부터 순종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

신약: 사랑으로부터 순종으로. 이웃을 사랑하라.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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