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과 욕망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기)

일반
작성자
윤휘종
작성일
2021-01-03 23:21
조회
736

 <크리스천과 욕망> 

새해가 밝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에 금주, 금연, 금욕과 같은 목표를 세웁니다. 물론, 크리스천이라면 평소에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롭겠지만, 모든 크리스천이 이런 부분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사람과 똑같은 육체를 입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런 문제들이 크리스천과 결부되었을 때, 더 큰 문제를 야기합니다. 주변의 시선 때문에, 순장님 혹은 SL님과 이러한 문제를 속 터놓고 나누지 못하고, 혼자만 끙끙 앓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죄의식에 사로잡혀 자유로운 영성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크리스천과 욕망을 주제로 욕망의 원인과 해결책을 살펴보고, 절제의 삶이 주는 평안을 다뤄보겠습니다.

1. 왜 욕망에 빠질까? (욕망중독의 원인)

헤겔에 따르면,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기본적 욕구(수면욕, 식욕, 성욕) 외에 욕구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인정욕구입니다. 인정욕구란 남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입니다. 왜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인정욕구가 있을까요? 바로 인간은 '자기의식'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동물처럼 의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의식할 수 있는 자기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의식하기 때문에, '남들이 날 어떻게 보는가'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존중하고 인정하면, 자신에 대한 의식이 긍정적이고, 반대로, 날 향한 다른 사람의 의식이 부정적이면, 자신 또한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의식을 가진 인간의 인정욕구는 타인에 달려있습니다.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은 인정욕구가 채워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인정욕구가 결핍되어 있습니다. 욕구 자체는 인간의 본능입니다. 이것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는 열심히 공부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열심히 운동을 하며 인정욕구를 채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욕구가 결핍된 사람이 이 결핍이 주는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무절제한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입니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욕구와 욕망을 구별합니다. 욕구는 신체기관의 본능입니다. 그러나 욕망은 물론 육체적이지만, 동물적 본능만이 아니라 인간적입니다. 욕망의 예로, 사업의 실패나 인간 관계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니코딘 중독, 알코올 중독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것들은 분명 육체적이지만 단순한 신체적 욕구와는 구별됩니다. 인간적 사회적 정서의 결여가 그 근저에 놓여있습니다.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타인으로부터 채워져야할 인정욕구를 술, 담배, 마약, 성 등의 물질적 쾌락으로 대체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물질이 주는 쾌락은 사람이 주는 정서적, 정신적 교감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물질이기 때문에, 결코 정신적 인정욕구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물질적 쾌락에 의존하는 사람은 그것에 중독되어 평생 그것으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도파민이 주는 쾌락은 널리 알려져 있듯이, 일시적이고, 한 번 충족되면, 무뎌지고 더 큰 쾌락을 찾게끔 인간을 유도합니다. 결국 인간은 쾌락마저 못 느끼고 갈증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정리하자면, 욕망중독의 원인 인정욕구의 결핍에 있습니다. 물질적 욕망 중독의 원인을 제대로 직시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입니다. 욕망에 중독된 사람은 정서적 공허함, 외로움, 우울증으로 인해 그러한 것들에 중독된 것인데, 물질적 쾌락은 절대로 그러한 정서적 만족감, 사회적 교류감을 채워줄 수 없습니다. 혹시 현재 욕망에 빠져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하고 계십니까? 유혹의 순간이 들 때마다 스스로 생각해보십시오. '아, 내가 지금 이러한 중독된 행동을 하는 것은 인정욕구의 결핍 때문이구나. 내가 하려는 행동은 절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구나!' 이렇게 자신의 문제의 원인을 인지적으로 깨닫는 것만으로도 중독으로 벗어나는 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2. 의지보다 환경이 중요하다! (중독벗어나기)

제임스 클리어의 책 <아주 작은 습관>에는 사람들이 다른 곳이 아닌, 카페에서 공부하는 이유를 소개합니다. 이유인 즉슨, 그 책에 따르면, 바로 카페가 공부의 능률을 올려주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카페는 공적인 장소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에, 딴 짓하게 되지 않고, 공부에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카페에서 공부를 해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공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또 카페에서 공부를 한다면, 커피값(사실상 장소값)을 지불했기 때문에, 돈이 아까워서라도 더 집중하게 됩니다. 3시간만 공부하다 집에 가고 싶어도, 돈이 아까워서라도 30분이라도 더 앉아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자는 성공적인 삶의 비결이 의지가 아닌, 환경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아무도 없는 집에서 공부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의지가 필요하고, 그 의지는 얼마가지 못합니다. 금방 침대에 드러누워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카페에 가면 작은 의지를 들여도 공부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자녀 교육을 하는 데, 최악의 상황이 부모는 거실에서 tv를 시청하고, 자녀한테는 문 닫고 방에 들어가서 공부하게 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 방에 들어간 자녀가 공부에 집중할까요? 딴 짓하고 있을 게 불보듯 뻔합니다. 안 봐도 유튜브입니다. 제일 좋은 공부법은 거실에서 탁자에 온 가족이 모여 함께 공부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거실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면, 자녀도 자연스럽게 부모를 따라서 공부할 수 있을 겁니다.  술, 담배에 중독된 분이라면, 술과 담배를 하는 친구들을 멀리하고, 교회 동역자들과 더 자주 어울리면 분명 중독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순장님과 함께 목표를 세우고, 조금씩 줄여나간다면, 적은 의지로도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순장님과 함께 약속을 했기에 약속을 지키고 싶고, 순장님을 실망시켜드리지 않고 싶은 마음이 샘솟기 때문입니다. 순장님은 분명 비밀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3. 건강한 자아상을 그리라!

위에서 언급한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는 습관과 정체성이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책에서는 정체성이 습관을 결정한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목사님 말씀을 듣는 사람이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자연스럽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목사님 말씀을 메모한다는 것입니다. 또 "나는 부지런한 사람이야"라는 정체성을 가졌다면, 정해진 시간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인다는 것입니다. 어떤 행동을 실천하기 어렵다면, 먼저 건강한 자아상을 그리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자녀야." "나는 선택받은 사람이야"라는 정체성을 가진다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건강한 자아상을 가진다면, 행동도 바뀌고, 또 그 행동은 다시 건강한 자아상을 회복하게 도와줍니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유명한 책이 있듯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의 모습'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제외하고도 속일 수 없는 대상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순원들, 반 아이들은 속일 수 있어도,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은 자신의 행동, 자신의 본 모습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운 행동을 하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고 죄의식에 빠져 건강하고 행복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된 삶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반면에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코람데오의 삶을 살아서, 나의 모습이 떳떳하다면, 하나님을 피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수 있습니다. 죄에 빠져 있다면, 하나님께서 축복하고 싶으셔도 절대 축복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하나님이시도 하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죄는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죄로부터 벗어나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고 그럼으로써 건강한 자아상을 회복하십시오. 새해에는 과거의 죄와 결별하고, 회복과 희망이 가득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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