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부흥사경회 <위대한 도전 "용서"> 제1과 말씀 요약

일반
작성자
윤휘종
작성일
2020-11-15 22:16
조회
802
2020.11.15 추수감사절 특별부흥사경회 <위대한 도전 "용서"> 제1과 위대한 도전, 용서

강사: 김 덕 신 목사님

*우리의 삶이 왜 달라지지 않는가? 우리는 지식(말씀)을 피상적으로, 추상적으로 안다.

피상적: 본질을 알지 못함. 추상적: 경험하지 못함.

우리는 타인을 피상적으로, 추상적으로 알기에 비난한다. 그 사람의 본질을 알고 그 사람을 경험한 자는 그 사람을 비난할 수 없다.

*용서: 복음의 핵심. 용서를 모르면 기독교를 모른다. 곧 구원, 거듭남을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용서를 받았다는 뜻.
  1. 욥이 우리에게 주는 용서에 대한 교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 고난 후, 정금이 된다. 고난 후, 세 친구를 용서하는 사람이 된다. 신앙에 있어서 가장 성숙한 모습이다.

"여호와께서....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과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욥42:7)

욥과 세 친구들이 차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달랐다. 곧 신학이 달랐다. 욥: 사랑의 하나님. 세 친구들: 고난의 원인을 찾고 욥을 정죄함.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 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피상적, 추상적으로 알았다.

용서를 하지 못하는 이유: 자기 의. 남을 비난하는 이유: 자기 의.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욥42:10)

정금과 같이 되기 전: 자기 의로 가득. 정금이 된 모습: 원수를 축복, 용서.

2. 요셉이 우리에게 주는 용서에 대한 교훈

28살 요셉의 고백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나를 건져 주소서. 나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창40:14-15)

=> 억울함을 표현.

39살 요셉의 고백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 애굽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창45:5-8)

=> 형들을 용서했다.

그렇다면, 요셉은 어떻게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는가? 요셉은 형들과 자신의 관계에 하나님을 개입시켰다. 용서: 타인과 나의 관계 속에 하나님의 개입을 인정하는 것. 하나님이 용서하라고 하시니까 용서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가 되는 것이다. 내가 직접 용서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신앙이란 관계 속에, 상황 속에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개입하시지 않으면 신앙이 아니다. 그것은 휴머니즘, 인문학이다. 내가 착해서 용서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란 무엇인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요셉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명을 깨달았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다. 자신의 인생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 계획하심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용서를 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용서가 되어진 것이다.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게 되어지는 것이다. 내가 하면 어렵다. 그러나 신앙은 쉽다. 왜냐하면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56살 요셉의 고백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창50:19-20)

아버지의 죽음 이후, 형들은 여전히 요셉을 두려워하고 있다. 요셉은 17살 때의 기억, 감정에 지배받고 있지 않다. 그러나 형들은 여전히 감정의 포로로 잡혀있다.

용서는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 용서는 자신의 의지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요셉의 형들은 용서를 경험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경험이 피상적이면, 추상적이면, 넘어질 때마다 두려워한다.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한 자는 자신의 약함, 죄성을 깨닫고 더욱 은혜를 붙들고 용서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기억조차 안 하신다. 기억을 못 하는 것은 능력의 문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능력이 없으신 분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억을 안 하시는 것이다.

3. 베드로가 우리에게 주는 용서에 대한 교훈

성경은, 설교는 일부가 아닌 전체를 봐야한다. 마태복음 18장은 제자들의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뤄져 있다. 첫 번째 질문: 천국에서는 누가 큽니까? 두 번째 질문: 몇 번 용서하면 됩니까? 베드로의 두 번째 질문이 용서와 관련되었기에, 앞부분의 주제는 용서임을 알 수 있다. 베드로는 뜬금없는, 주제와 동떨어진 질문을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의 주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제자들의 첫 번째 질문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마18:1) 이에 대해 예수님은 '누가 천국에 들어가나'로 주제를 변경하신다. 천국에서 누가 큰지를 따질 것이 아니라, 우선 누가 들어갈 자격이 있는가부터 살펴야 한다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용서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니까 결국 천국에서는 용서하는 자가 크다는 말씀이다. 성숙한 자는 용서한다. 반면에 미숙한 자는 다툰다. 내가 용서를 못 하는 이유는 내가 작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마18:15)

얻는다는 표현은 헬라어로 경제적 이득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형제를 용서하여, 형제를 얻는 것이 가장 큰 유익이라는 뜻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8:18)

=> 우리는 보통 땅이 하늘의 지배 아래에 있다고 생각한다. 옳은 생각이다. 하늘이 땅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땅이 하늘에 미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 땅이 하늘에 영향을 미칠까? 바로 용서다. 본문에 나오는 땅에서 맨다는 표현은 용서한다는 의미다. 본문의 주제가 용서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주기도문에 나오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해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표현도 용서의 경우에는 땅이 하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편집자 주-)

이러한 용서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일곱 번까지 용서하여 주리이까?"고 예수님께 묻는다. 이는 당시 율법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에서는 획기적인 발상이다. 왜냐하면 율법주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Tit for Tat)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내심 일곱 번 정도 용서한다고 하면 예수님께 칭찬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베드로의 기대와 달리, 예수님은 그를 책망하신다. 자신의 교훈, 용서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책망하신다.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마18:23)

'끝까지 받아내겠다'는 마음은 용서가 아니다. 용서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마18:35)

용서: 자유. 용서하지 않음: 감정의 감옥에 갇히는 것. 용서해주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

용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위한 것. 하나님은 피해자의 하나님이시다. 그러한 하나님이 절대 가해자의 편에 서실 리가 없다. 용서는 남이 아닌, 나를 위한 것이다. "용서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는 "내가 갚아주겠다"는 의미가 내포해있다. 하나님께서 대신 갚아주신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마5:45)

용서=>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됨.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고장나서 용서하기 힘들다. 우리 안에 죄가 있기 때문이다. 죄: 마음을 고장하게 함. 용서할 능력이 없음.

마음을 고치시는 분: 성령

새언약: 성령이 안에 오셔서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다. 부드러운 마음이란 순종하는 마음이다. 불순종하는 마음은 강팍한 마음이다.

그렇다면, 성령은 어떻게 일하시나?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다.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신다. 하나님께서 하시지만, 우리의 의지를 받기 원하신다. 우리가 동참하기 원하신다. 우리는 의지만 하나님께 드리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셨다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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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1-15 22:42

    감사합니디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