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신앙

일반
작성자
윤휘종
작성일
2021-01-26 07:03
조회
840
<철학과 신앙>

임마누엘 칸트는 물었다.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첫째는 우리의 지식을 다루는 인식론에, 둘째는 우리의 도덕을 다루는 윤리학에, 셋째는 종교철학에 속한다. 이 세 가지 물음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으로 귀결된다. 나아가 인간에 대한 물음은 곧 “나”에 대한 물음이다. 그렇다.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졌던 서양철학 2500년의 역사는 바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는 역사였다. 3000년 전, 델포이 신전에도 “너 자신을 알라”란 문구가 쓰여있지 않았던가? 이성을 지니고 태어난 인간은 본래 “나”에 대한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는 숙명에 처해있다.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누군가는 철학을, 다른 누군가는 자연과학을 탐구한다. 학문이란 “논리”란 링 위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격투의 현장이다. 그곳에는 나이 혹은 지위에 따른 어떠한 권위도 없다. 오로지 논리로 결판이 나는 현장이다. 그곳에는 어떠한 “질문”도 허용된다. 그 질문이 논리적이기만 한다면.

그러나 인간은 “논리”라는 링 위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구도자로서의 인간은 광야에서 방황하는 운명에 놓여있다.

학문이 질문을 던지는 현장이라면, 신앙은 답을 주는 현장이다. 그곳에서는 질문이 허용되지 않고 오직 절대적이 답만이 선포되는 현장이다. 지친 구도자들은 그곳에서 쉼을 누린다. 신앙은 답을 찾아 광야에서 헤메는 구도자를 위한 샘물같은 장소다. 스스로 구원하려고 노력한 사람만이 신앙의 샘물의 참 맛을 누릴 수 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가장 고군분투한 인간만이 신앙이 주는 참 평안의 가치를 깨닫는다.

철저히 좌절해도 괜찮다. 어쩌면 그 현장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 오늘도 답을 찾기 위해 치열한 삶의 현장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가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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