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2(화) 새벽예배 목사님 말씀

작성자
윤휘종
작성일
2021-03-02 06:50
조회
1227
 2021.03.02(화) 새벽예배 목사님 말씀

본문: 사도행전 14장 8-18절


본문에는 루스드라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앉은뱅이를 고치는 장면이 등장한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수용하면, 더욱 권면하고, 그들이 거부하면 떠났다. 거부하는 자들에게 억지로 복음을 관철시키고자 시도하지 않았다. 다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했다.

보통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루스드라에서는 특별히 대중을 상대로 복음을 전한다.

9절: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듣는다는 것은 전인격적인 마음의 태도에 의존한다. 앉은뱅이의 듣는 태도가 바울에게 보였다. 바울과 앉은뱅이의 눈과 눈이 마주했을 것이다. 듣는 사람과 듣지 않는 사람은 구별된다. 왜냐하면 들음은 마음을 열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들음은 믿음의 시작이자 기본이다. 한 사람의 신앙의 수준은 듣는 것에 달려있다. 들을 때 생명력이 파급된다.

10: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

=> 바울이 그 사람을 향해 외친다.

11: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 당시 그 지역에 널리 퍼진 그리스 신화로 인하여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생각한다.

15: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 함이라"

=>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바로 복음을 전하는 이유가 그들이 헛된 일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함에 있었기 때문이다. 복음 전파의 목적은 그들의 영적 회복에 있었다.

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 신학적으로 논쟁이 되는 구절. 복음을 몰랐던 사람들에게 구원이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시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다. 과거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다. 과거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위탁할 뿐이다. 우리가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다. 지금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복음을 들은 자에는 생명 혹은 심판의 길이 있다. 복음을 들은 자는 핑계댈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셨기 때문이다.

17: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

=> 세상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일반계시 혹은 자연계시로 역사하신다. 자연 속에서 하나님이 드러나신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로마서 1장 20절-

18: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엔 당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을 거부할 때, 그들이 돌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거부한다면,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사기꾼으로 몰아, 돌로 쳐죽일 수도 있었다. 바울은 목숨을 걸고 그들을 거부한 것이다.

결과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과정 하나 하나도 중요하다. 우리는 '누릴 거 다 누리고 복음을 전해도 괜찮지 않나'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과정도 중요시 여기신다. 과정 하나 하나를 선용하신다.

매일 은혜 안에서, 겸비하고, 점검하여 결과만이 아니라, 삶의 과정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복된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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