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선한 목자와 삐딱한 양 한마리

작성자
임형수
작성일
2024-03-28 19:55
조회
61
고난주간을 관통하면서 목사님께서 매일 새벽 전해주시는 말씀은 자신의 생명보다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에 잇대어져 저의 마음이 시리다 못해 저리게 되어 결국엔 매일을 애잔한 눈물로 시작하게 만드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채 가슴 먹먹한 새벽 예배 말씀을 상기하면서 또 다시 흘리는 눈물을 애써 훔쳐가며 혼자만의 큐티 시간을 조용히 가져봅니다. 속기로 기록하고 메모해 둔 말씀을 차분하게 다시 한 번 묵상하고 묵상하면서 고난 주간 예수님의 행적을 함께 따라가다 보니 어느 새 목사님께서 지난 주일예배 강해 말씀 시간에 다루어 주신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모습이 떠올라서 마주하게 됩니다

저의 두 눈에 담긴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는 양들의 문 앞에 나타난 사나운 곰과 사자와 같은 맹수로부터 어린 양의 생명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위해서 사력을 다하고 계셨습니다. 이미 삯꾼 목자들을 도망치고 없었기에 예수님 홀로 맹수들과 맞닥뜨려 싸우고 계십니다.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울 만큼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로부터 여기저기 물리고 할퀴고 찢기어 예수님의 얼굴과 온 몸은 상처와 피투성이로 범벅되어진 모습 이십니다

마치 예전에 예수님의 수난이 온 몸에 전해져 소름 끼치면서 보았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예수님의 형상을 떠오르게 합니다. 너무 끔찍하고 처참한 모습이 저의 눈앞에 펼쳐집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주님께서는 저를 바라보시면서 활짝 웃고 계십니다. 제가 그런 주님의 모습이 하도 이상해서 주님께 여쭈어 봅니다 “ 주님 상처가 아프고 고통스럽지 않으신가요?, 다른 목자들처럼 도망치시지 왜 도망치지 않으셨어요? 이런 상황에서도 왜 그렇게 저를 보면서 웃고 계신가요? 저는 가슴이 찢어지는데 웃음이 나오시나요? 주님께서 온화하신 음성으로 이내 대답 하십니다

“ 얘야~ 소중하고 존귀한 너의 생명을 구했으니까.. 난 아무래도 괜찮단다.. 네가 죽지 않고 영원히 나와 함께 할 것을 생각하니 정말로 기쁘구나! 그래서 이렇게 상처투성이가 되고 아프지만 웃을 수 있단다. 너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나의 생명을 던질 수 있단다”

아.. 주님.. 심장이 뜨거워집니다. 아니, 심장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자신의 생명보다 보 잘 것 없는 양들의 생명을 더 소중하게 여기시는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감히 헤아려 봅니다. 뜨거운 눈물이 두 볼에 흐릅니다

연이어서 목사님의 말씀을 묵상하다보니 곧 바로 십자가를 향하여 외롭고 쓸쓸하게 걷고 계신 예수님을 클로즈업 시켜주십니다. 배신당하고 부인당하고 외면당하신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십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 보면 마치 이천년 전으로 타임슬립 하여 과거로 돌아가 예수님께서 계신 장소와 시간 속에 함께 머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해 주십니다. 고난의 시작과 끝.. 그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시는 예수님 곁에는 항상 제가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 하실 때 “호산나, 호산나” 외치며 환호하던 무리 속에 분명 저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수님께서 무력하게 끌려가시는 모습을 보게 되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매수당한 저는 열심당원 이었던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님을 죽이라고 맨 앞에 서서 선동하며 외치고 있습니다

이런 저의 이중적인 모습은 지금의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저의 모습 그대로를 잘 반영해주고 있기에 전혀 낯설지가 않습니다.

평소 “예수님 사랑합니다.. 항상 저의 삶에 주인 되어 함께 해주세요” 기도하고 찬양하며 주님을 애타게 또는 격렬하게 부르짖으며 환호하는 저이지만 조금이라도 제 삶에 깊게 개입하거나 간섭하시는 것 같으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본성을 드러내 주님을 마음속에서 몰아 내려합니다. 원하는 것을 들어 주시지 않으면 주님을 쫓아내고 마음에 다른 것을 두려고만 합니다. 꼭 닮았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나는 어떻게든 살려하고 예수를 죽이려고 합니다.

부끄럽게도 이천년 전에 제가 실제로 그 시대에 존재했다면 분명 저는 무리 중에 한 명이었을 겁니다

예수님의 발걸음이 점점 십자가를 향해 가고 계십니다. 여전히 저 또한 그 여정을 주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그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여전히 우리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는 길 잃고 방황하는 어린 양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침묵하시며 한 걸음 한 걸음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고 계시는 것을 목도 할 수 있습니다.

길 잃고 방황하는 어린양을 구하시려고 결국 사자와 곰과 같은 사납고 포악한 유대 종교 지도자와 로마군에게 무력하게 내어 준 바 되셨습니다.. 예수님을 내어 준 이가 아니러니 하게도 다름 아닌 길 잃고 방황하는 어린양, 저인 것을 알고는 더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브라이도리온 이라는 뜰 안에 모여 있는 수많은 군인들 가운데 또 다시 저의 모습이 보입니다.

초췌해진 예수님께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머리에 씌웁니다. 갈대로 머리를 치며 침을 뱉습니다. 저도 곁에서 기꺼이 한 몫 거둡니다. 예수님께서 길 잃은 양,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말로 형용 할 수 없는 조롱과 수치와 모욕을 당하셔도 선한 목자의 침묵은 계속됩니다. 납득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온유함으로 침묵으로 일관하시는 예수님을 저는 결코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저와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수치를 당하거나 모멸감을 느끼면 날카롭고 사나운 사람들에 대항하여 오히려 그들보다 더 사납고 포악해져 큰 소리로 항변하는 저를 보게 됩니다. 상대방에게 가시관에 엮인 가시보다 더 뾰족하고 날카로운 혀와 눈빛의 가시로 상처를 주고 아물기도 전에 좀 더 자극적으로 상처를 덧입힙니다. 주님의 마음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악독한 옛 사람의 성품만 차오릅니다.

그렇게 주님은 저의 마음 한 구석에서 옛사람에게 조롱당하고 멸시 당하고 계십니다. 또 저는 그렇게 로마 군인 중 한명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바와 같은 죄인인 저를 대신해 주님을 희생 제물(아사셀) 삼으실 것을 천명하셨기에 주님께서는 침묵 가운데 순종하시며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고 계십니다. 내어 준 바에 의해 무력하게 끌려가고 계시지만 그 길이 곧 길 잃은 어린양을 살리는 구원의 길이요. 생명의 길임을 주님을 알고 계시기에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고 계십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천군천사를 동원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지만 오직 그 길만이 저의 죄와 허물을 씻겨주시고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실 수 있는 길임을 아시기에 참을 수 없는 모욕과 수치와 두려움 속에서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계십니다.

그 십자가로 향하는 길은 바로 제가 걸어가야만 하는 길이었음에도 이 모든 것을 우리 주님 홀로 지고 가고 계십니다.

결국 가장 큰 고난.. 그리고 영광 십자가 앞에 다다른 주님을 봅니다. 종국에는 무리 중에 한명, 군인 중에 한명, 바라바와 같은 삐딱한 양과 같은 제가 선한 목자 되신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 주님과 함께 죽었음을 고백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진심으로 그 날은 이미 이천년 전에 이루어졌음을 깨닫기를 소망합니다.

매년 찾아오는 고난주간은 주님과 함께 고난에 동참하고 싶은 갈망과 다짐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고난마저도 고난주간에 한정되어 묵상으로 시작하고 묵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난주간에 한정되지 않고 평생토록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 고난의 길을 기꺼이 따라가길 원합니다. 찾아온 고난에 마딱뜨리면 요리조리 피할 방법을 애써 찾아 회피하며 주님을 믿는다면서 편하고 쉬운 길만 고집하는 화인 맞은 양심으로 살아가는 제가 아니라 담대하고 당당하게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여 고난당한 예수의 흔적을 자랑스럽게 마음과 육에 품고 살아내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감내하기 버거운 고난 일지라도 고난 속에서도 우리 주님을 끝까지 믿고 의지하며 따를 때 마침내 주실 영광의 대관식을 바라보며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 고난주간.. 목사님의 말씀을 통하여 살아계신 주님을 매일 만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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