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특새 1,2일차 은혜 나눔

작성자
김남일 (24-7)
작성일
2024-03-26 06:40
조회
92
3/25(월) 막14:66-72 부인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성화는 매일 반복되는 회개가 필요하다. 죄의 길에서 주님의 길로 돌이키는 회개가 없이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회개하게 하시고, 끊임없이 주님을 닮아가도록 이끄신다.

베드로가 사람들의 시선을 바라볼 때 그는 죄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예수님의 시선을 마주하게 되자 그는 주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고, 돌이켜 주님의 길을 걷게 되었다. 세상 가운데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때 나의 삶이 살아나고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낼 수 있다.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 =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
예수님께서 먼저 돌아서서 베드로의 눈과 마주치는 것은 그에게 은혜를 베풀고 계신 것이다. 베드로의 회개는 예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시선 속에는 그를 부인하고 있는 베드로가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되는 훗날 베드로의 삶이 보였다.

느낀점
베드로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을 때 그는 죄의 길을 걷지만, 예수님의 시선을 마주할 때 말씀을 통해 주님의 길로 돌이키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며, 현재의 그가 아닌 훗날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증인되어 살아가는 제자의 삶을 바라보시고 오늘 그에게 회개의 자리로 나올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내가 과거에 어떠한 삶을 살았든, 오늘도 스스로에게 실망할 정도로 엉망인 삶을 살고 있든 상관없이, 돌이키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 말씀에 힘입어 살아갈 때 주님의 길을 걷는 은혜를 더해 주심을 고백한다. 나 스스로에게 또는 타인에게 시선이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주님만 바라보는 내가 되길 소망한다.

 

3/26(화) 막15:1-5 고난 중에 끝까지 침묵하시다

유대 총독으로 많은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자리에 있었던 빌라도.
그의 정치권력을 위해서는 폭력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는 ‘잘못된 기준’을 가지고 있었기에 결국 ‘잘못된 결정’을 하게 되었다.

안식일 전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볼 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유월절 전에 처형하기 위해 급박히 일을 진행했음을 알 수 있다. 빠른 처형을 위해 하나님에 대한 ‘신성 모독죄’가 아닌, 로마제국에 대한 ‘반역죄(내란 음모죄)’로 빌라도에게 고소했다.

1절, 넘겨주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종교 지도자들에게 넘겨 주었는데(막14:41),
유대 종교지도자들도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 주었다.
*롬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은 가장 무력하실 때에도 우리의 구원을 이루실 수 있는 능력의 주님이다. 오히려 무력해지셔서 가장 절망적인 때에도 위대한 구원의 능력을 행하실 수 있다.

느낀점
자신이 누리고 있는 부와 권세, 명예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예수님을 희생양으로 삼은 빌라도. 그의 삶의 기준은 그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사셀, 예수 그리스도는 권세와 명예를 모두 내려놓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죄로부터 구속하시기 위해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희생양이 되어 주셨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해 움켜쥐고 있었던 것들은 무엇일까?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비난했고, 내 평안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을 희생시켰다. 내 것을 내어주기 아까워 다른 이의 필요를 모른 척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지키고자 손에 움켜쥔 것 때문에 오히려 영적으로는 무너졌음을 고백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손을 펴시고 기꺼이 못 박히셨다. 오직 내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모든 고난과 수모를 견디신 예수님. 철저히 무력해지는 자리로 나아가셨지만, 위대한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주님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주님의 길을 따르는 자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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