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청년성서지리] <주님께 나를 던진다> -제5일

일반
작성자
윤휘종
작성일
2020-12-14 00:44
조회
584
<2017청년성서리지 기행문>

주님께 나를 던진다

記者 윤휘종

 

5(2017년 1월 27일 금요일)

-페트라 트래킹

“양은 목자를 앞서지 않는다.” -목사님, 트래킹 중 몇몇 청년들이 목사님을 앞질러 가자-

“출애굽은 단순히 애굽을 탈출한 것만이 아니라 인류의 구원사이다. 선악과는 주권 인정의 문제다. 뱀이 선악과를 먹게 하지 않았다. 뱀은 질문만 했다. 인간의 마음 속에 이미 죄가 들어온 것이다. 아담은 하와 옆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남자는 자카르, 기억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해야 한다. 가죽옷은 희생을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카인과 아벨은 신앙의 충돌이다. 신앙은 지금도 사람 사이에 가장 큰 충돌이다. 인본주의와 피의 제사(신앙)의 대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부부, 부모 자식도 못 넘는 게 신앙이다. 남자가 여자를 얻기 위해서는 생명을 바쳐야 한다.” -목사님-

“언어학자들은 언어가 한 번에 형성되었다고 본다.”-목사님, 바벨탑 사건을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시점은 전부 현재다. 여호수아는 모세와 다르게 약함이 부각되어 소개된다. 그 이유는 여호수아에게 필요한 것은 능력이 아닌 순종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가나안 땅은 장소가 아니다. 진정한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땅이다. 땅이 아닌 통치가 중요하다. The Kingdom of God. 순종하는 것만큼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된다. 순종이 있는 현장이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신다. 교회는 얼마나 모이는가가 중요하지 않다. 누가 모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바로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목사님-

“처음 성서지리에 가서 토하면서 권사님을 업고 시내산에 올랐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셨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를 위해 모세를 준비했다. 많은 사람을 준비했다. 예수를 준비했다.”-목사님, 1992년 1월 9일 첫 성서지리를 회상하시며-



-다시 이스라엘

“그냥 기도제목을 듣는 것보다, 간증을 들으면 기도제목이 더 깊어지고 입체적이게 된다. 간증을 하면 마음 속에 정화되는 영적 카타르시스가 생겨난다. 마음이 주님으로 채워진다. 혼자 갖고 있기 보다는 사람들 앞에서 나눠야 한다.”-목사님, 이스라엘로 가는 버스에서-

“이승우 작가의 <생의 이면>을 읽어보면 좋겠다. 주인공이 어릴 때 상처를 갖고 있지 않고 사람들에게 털어놓았으면 얼마나 좋을까?”-목사님, 버스에서-

“고백은 수치가 아니다. 고백은 삶을 순화시킨다. 고백은 삶을 새로운 것으로 채운다. 성서지리는 하나님과의 독대만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고 너를 바라보고 ‘너와 나’를 대면하는 것이다.”-목사님, 버스에서-

“나는 새벽에 책을 읽는다. 새벽만큼 책 읽기 좋은 시간이 없다. 새벽엔 오로지 책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날 집은 책은 절대 놓지 않는다. 최인호의 <별들의 고백>을 읽어보면 좋겠다. 조정래 작가에 따르면, 좋은 글은 피눈물에서 나온다.”-목사님, 버스에서-

“청년들의 헌신은 귀한데, 사역이 신앙의 정체성이 아니다. 일이 본질이 아니다. 침체된 사람은 대부분 사역 때문에 침체된다. 사역도 소중하지만, 내가 누구인가를 점검해야 한다. 목사도 직임에 불과하다. 목사 이전에 신자가 되어야 한다. 신자는 영원하다. 목사는 나의 역할이지 나 자신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람 박정식으로 묻히고 싶다. 사역을 내려놓는 걸 어려워해서는 안 된다. 일 자체가 자신을 고착시킬 때가 많다. 일이 전부가 아니다. 신앙을 견고히 세웠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기질, 기복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신앙은 그렇지 않다. 성령의 역사는 흥분이 아니다. 성령은 잠잠히 역사하신다. 신앙생활도 그렇게 누렸으면 좋겠다. 사역을 내려놓아도 신앙을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힘들고 어려우면 적당히 해라. 그걸로 인생이 눌려서는 안 된다. 사역 가운데 지쳤다는 것이 신앙을 포기하는 핑계가 돼서는 안 된다. 신앙이 우선이다. 가족이 좋아하지 않는 헌신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무리하지 않으면 좋겠다. 사역이 가정을 해쳐서는 안 된다. 사역과 삶의 균형이 필요하다. 가정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 젊은 목회자가 사역과 가정 사이의 고민을 갖고 나에게 질문했다. 나는 그에게 ‘나는 내 아내가 싫어하면 목회 안 한다’고 대답했다. 나는 목사이기 이전에 내 아내의 남편이다. 내 아내의 남편은 나뿐이다. 그러나 은혜의 교회는 나 아니어도 목회할 사람이 많다.”-목사님, 버스에서. 간증의 시간에 청년들이 사역으로 힘겨움을 토로했던 것이 마음에 걸리셨나 보다.-

<팡세> -동역자란 무엇인가?

“간증을 듣고 한명 한명이 정말 귀하다고 느껴졌다. 어려운 상황에서 주님께 불평할 수 있는데, 말씀 앞에 순복하고 주님께 예배드릴 수 있음에 감사하고, 드릴 수 있음에 감격하는 삶! 너무 존귀하다.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음에 감사하다. 그들이 나의 동역자이기에 감사하다. 나는 2016년 처음 순장 사역을 시작할 때, 내게 동역자가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해줄까? 누가 내 마음을 알아줄까? 누가 내게 손을 내밀어줄까?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행복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 귀하고 그 가운데 내가 있어서 행복하다. 39명의 동역자를 얻음이 감사하다. 왜 그럴까? 무엇이 내 생각을 변화시켰을까? 한 가지를 깨달았다. 동역자는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기도해줄 대상이다. 내가 누군가의 어려움에 애통하고 눈물로 기도할 때, 그 순간 나는 동역자를 얻게 된다. 동역자는 나에게 손 내밀어주는 자가 아닌, 내가 손 내밀어주는 자이다. 동역자를 얻는다는 것은 나를 위해 기도해줄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도해줄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그 사람이 내게 하는 것과 상관없이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동역자는 만들어진다. 사랑은 거래가 아니다. 동역자는 내가 기도하고 기도받는 거래의 관계가 아니다. 동역자란 그 사람의 행동과 상관 없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기도해주는 전인격적인 관계이다. 동역자를 얻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태도에 달려있다.”-윤휘종, 밤 중의 생각-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