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월요일 특새를 드리고

작성자
신은주
작성일
2021-03-29 09:06
조회
2736
종교와 십자가! (창4:3-4)

'죄'는 윤리 도덕적인 의미를 넘어, 하나님을 거부하고 불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사람들에게는 육적인 죽음, 영적인 죽음, 영원한 심판이 주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범죄한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언약'이다. 첫째,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구원자를 통해 우리를 건지실 것을 말한다. 둘째, 가죽옷을 입히셨다는 것은 우리의 수치와 허물을 가리실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원시언약이라고 한다.

그런데 '세월이 지난 후에' 아담과 하와의 자녀인 가인과 아벨의 전혀 다른 제사가 나타난다. 여기서의 제사는 '예배'의 의미다. 가인은 그 자신이 노동해서 거둔 열매인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예배했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드림으로 예배했다. 이렇게 다른 예배가 드려진 것은 구원에 대한 이미지가 달랐기 때문이다. 구원이란 '건져낸다'는 의미다. 구원에는 또 다른 의미들이 있다.

첫째, 구원은 '속량하다'의 뜻을 가진다. 마치 노예를 사서 해방시키듯이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속박에서 자유케한다는 의미다. 죄의 삯인 사망을 예수님 자신의 생명으로 속량하신 것이 구원이다. 레위기 17장 11절을 보면 피흘린다는 개념 속에는 생명을 내놓는다는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아벨의 제사를 통해 피흘림에 대한 모형이 계속 등장하는 것이다. 가인의 예배에는 자신이 노동해서 얻은 것이라는, 인간의 종교성이 포함되어 있다. 세상의 많은 종교들에는 인간의 노력이나 열심, 행위는 있지만 구속은 없다. 아벨이 양의 첫 새끼를 드린 것은 언젠가 구원자가 오셔서 희생당할 것을 바로 보는, 구약에서 바라본 십자가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구원은 '모든 더러움을 씻는다'는 의미이다. 피는 우리의 더러움을 제거하고 정결케하는 것이다. 셋째, 구원은 '덮는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죄가 가리워졌기 때문에 하나님 편에서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구속에 포함된 다양한 의미는 피흘림이라는 하나의 모형을 통해 드러난다.

아벨은 전혀 다른 예배를 드렸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표하신, 생명을 내놓는 피의 예배였다. 히브리서 11장 4절에 의하면 아벨은 더 나은, 온전한 예배를 드림으로써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를 증명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되신다.(행4:12) 매 순간 예배를 드릴 때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고백하고 예수님을 힘입어 예배하는 것이 순종의 예배다. 불순종은 자기 중심적이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죄성이다. 아벨의 예배에 대한 태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대가를 지불하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십자가를 바라볼 것을 다시 한번 결단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 양의 피흘림을 통해 자유함을 얻었다. 이것이 십자가를 묵상하는 이유다.



나의 예배는 어떤 예배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과연 예수님의 피흘림의 의미를 깊게 새기고 매 순간 그 대가지불과 그 크신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예배인지.. 그 동안의 예배가 쉽게 주어짐에 너무 무더졌음을 고백한다. 현장 예배 재개 이후 매 주일 현장예배를 사모하고 조금 더 일찍 채비를 하고, 특새 좌석을 신청하며 새삼스럽게 예배의 소중함을 마음에 다시 새긴다. 코로나의 역설이다. 여기에 더해 예배가 무엇을 붙잡고 힘입어 나아가는 예배여야 하는지를 깨닫는 고난주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나의 예배의 차원이 깊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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