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화요일 특새를 드리고

작성자
신은주
작성일
2021-03-30 09:14
조회
1576
모리아의 십자가! (창22:13-14)

 

창세기 12장부터는 구속사를 확증하기 위한,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계획이 나타난다. 그 계획은 지금도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를 통해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임을 약속하셨다. 그를 통해 모든 언약을 선언하셨고, 하나하나씩 성취해가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내 사라를 통해 태어날 자식이 후사가 될 것이라고 하셨지만 그에게는 백 세가 되도록 자식이 없었다. 사라 역시 생산할 수 없는 몸이었다. 성경에서는 메시아의 계보에서 어머니를 부각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열왕기에 나타난 왕조시대에서도 메시아의 계보를 이어가는 것은 여인들이었다. 이것을 끊기 위한 사단의 강력한 압박에도 이 계보에 흐르는 하나님의 구속사는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99세일 때 할례를 행하도록 하시며 다시 한번 후사를 약속하신다. 할례는 '끊어낸다'는 뜻으로 '너는 죽었다'는 선언이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번성할 수 있다는 것을 몸에 새기는 것이다. 신약에서는 이것이 세례로 나타난다. 세례는 '나는 죽은 존재이며 이제는 예수님과 함께 산다'는 의미로, 구약의 할례와 신약의 세례는 매칭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아비)의 이름을 아브라함(열국의 아비)로 바꾸시며 그 아내 사래(어미)의 이름 역시 사라(열국의 어미)로 바꾸신다. 마치 죽은 자와 동일한 사라를 통해 독자를 주시겠다는 선언이다.

그리하여 아브라함과 사라가 백세 때 얻게 된 독자 이삭. 독생자는 생명 그 이상의 월등한 의미를 갖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지시하신다. 번제는 '온전히 드린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기 위해 지금의 예루살렘인 모리아로 순종하여 갔다. 앞장서서 갔을 아브라함과, 나뭇단을 지고 따랐을 아들 이삭. 그 심정을 감히 상상해볼 수 없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만류할 때까지 실제로 이삭을 결박하고 칼날을 대었다. 성부 하나님께 순종하는 아브라함과, 그 아버지께 순복하는 이삭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브라함은 수풀에 걸린 수양으로 번제로 드렸는데, 그는 수양이 있을 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하나님이 준비하셨다는 '여호와 이레'는 수양 하나 뿐이 아니었다. 수양은 예표로서 메시아에 대한 그림 언어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현장, 동일한 장소인 모리아산의 꼭대기 골고다로 십자가를 지고 가셨다. 아브라함은 예표였으나, 하나님은 실제로 그 독생자를 죽게 하실 것이었다. 모든 구약은 오실자의 예표다. 오늘 본문의 장소인 모리아는 '하나님이 보신다'는 의미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이 당신의 독생자를 내놓아야 할 장소라는 것도 보셨다. 아브라함 이후 요셉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민족은 번성했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그 구원계획을 성취하셨다. 구약에서 바라본 십자가를 통해 언약을 살펴보며 그것이 실현되기까지 나는 어떻게 순종하고 응답할 것인가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실현되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나아갈 때 진정한 감동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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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아주 오래 전부터 계획되고 실현되고 있었던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를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 가운데 나는 어느 지점에 서 있을까를 생각해보았을 때, 나의 시선은 근시안적이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아브라함의 심정, 하나님의 심정을 조금씩 더 헤아리며 순종함으로 나의 삶의 현장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는 한 걸음을 내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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