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목요일 특새를 드리고

작성자
신은주
작성일
2021-04-01 10:27
조회
2610
하나님의 어린 양! (요 1:29, 36)

 

구약의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간의 침묵 시대 끝에 가장 먼저 나타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향해 첫번째로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선언한다. 그가 예수님을 바로 메시아라고 표현하지 않고 '어린 양'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구약을 아우르는 핵심적인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1년 된 흠 없는 어린 양,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유월절 어린 양이 떠오른다.

 

양은 지독한 근시안으로 목자가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도살하거나 털을 깎을 때조차 잠잠히, 대항하지 않는 모습은 마치 나약한 우리와 같다. 예수님께서 무지하고 연약한 나를 품어주시고 우리의 모든 약함을 친히 담당하셨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그는 우리의 모든 죄악을 뒤집어쓰시고 청산하셨다.

성경에는 구속사의 핵심적인 현장마다 어린 양이 등장한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입히신 가죽 옷에는 양의 희생이 전제되어 있다. 우리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희생이 필요한 것이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피의 제사로 드림으로써 진정한 예배의 의미는 예수님 이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을 선포하는 데 있다는 것을 보였다. 아브라함의 모리아에서의 제사는 실제로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은 대속의 예수님이심을 나타낸다.

메시아는 '기름 붓는다'라는 뜻으로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기름부음은 예언자나 제사장, 왕을 세울 때 성령이 임하셔서 특별한 사역을 맡기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런데 메시아의 기름부음은 우리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는 세례의 의미이다. 모든 예배 때 피 흘리는 양은 예수님의 희생을 상징한다. 이사야 53장은 고난 당하는 종에 대한 예언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그는 산헤드린 공의회에서도, 빌라도 앞에서도 끝까지 침묵하셨다. 그는 메시아이지만 어린 양으로 자신의 사역을 완성하셨다.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사람들에게 세례 베풀 때 예수님이 찾아오셨다. 세례는 원래 그의 죄를 씻는다는 선언이다. 그런데 요한의 세례는 정결한 삶으로 예수님을 맞이하도록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는 세례였다. 마태복음 3장에는 예수님이 요한으로부터 세례받으실 때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하나님이 동시에 등장하는 현장이 나온다. 성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속사가 성자 예수님을 통해 성취될 것을 공포하는 현장이다. 요한이 예수님께 행했던 세례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첫번째는 죄의 '전가'이다. 구약의 제사에서 양에게 죄를 전가시키듯이 모든 죄를 그에게 담당시키는 것이다. 두번째는 죽음에 대한 예고다. 양은 제사에 바쳐지기 전, 씻겨진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담당하신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나를 회복시키시기 위해 죄를 뒤집어쓰시고, 그 자신을 산 제사로 드리기 위해 우리를 정결케 하셨다는 것이 예수님의 세례의 의미다.

예수님은 정확히 유월절 양을 잡는 그 시간에 십자가에서 생명을 온전히 드리셨다. 어린 양이 되셔서 다 이루셨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놀라운 회복의 선언을 완성하신다. 부활은 죽음을 관통해야만 나타나는 하나님의 승리인 것이다. 어린 양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는 구속사를 기억하며 매 순간 은혜 안에 견고하게 세워지는 신앙이 되기를 바란다.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자주 부르는 찬양 가사에 나오는 '어린 양'에 대한 의미를 말씀을 통해 배우며 더욱 깊은 은혜를 누린다. 고난주간 특새를 통해 요일마다 구약부터 예표된 그리스도를 짚어가며, 부활의 감격의 순간을 점차 더욱 기대하게 되는 오늘이다. 그 대속의 의미를 진하게 새길 수록, 부활의 영광 역시 진하게 다가올 것이다. 끝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희생을 오늘도 마음에 다시 한번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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