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 칼럼] 공간과 사유 -온라인 시대의 도전

작성자
윤휘종
작성일
2021-10-10 16:19
조회
676
2021.10.10(주) 공간과 사유 -온라인 시대의 도전

임마누엘 칸트는 철학에서 획기적인 혁명을 일궈냈습니다. 칸트 이전에 철학자들은 인간의 사유의 바깥에 놓인 진리를 탐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반면에, 칸트는 철학의 주제를 인간의 사유 바깥에 있는 "진리"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인간의 사유의 조건 내지는 형식"으로 전복시켰습니다. 칸트 이전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지성이 신의 지성에 곧장 참여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칸트는 신의 지성에 비해 인간의 지성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칸트가 의도했던 것은 '만약 우리가 진리를 알고자 한다면, 우리는 진리 자체로 뛰어들기 이전에, 진리를 탐구하는 인간의 사유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유의 혁명적인 전복은 마치 천동설에서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에 비유됩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사유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시간'과 '공간'입니다. 신의 사유는 시간과 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 시간은 항상 현재이고, 하나님은 모든 공간으로부터 초월해 계십니다. 이와 달리, 인간의 사유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행복했던 시간이 오늘날 나에게 괴로움을 주기도 하고, 오늘 힘들었던 시간이, 미래의 나에게 기쁨을 주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사유가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우리의 사유는 공간의 영향 아래에 놓여있습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날 때, 그곳에서 우리가 새로운 성찰을 얻어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일상으로부터 떨어져, 새로운 장소를 보게 되니, 자연스럽게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커플들이 성서지리를 떠나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별을 경험하게 됩니다. 새로운 장소에서 조금은 거리를 둔 상태에서 서로의 모습을 보게 되니, 평소에 붙어다닐 때는 보이지 않았던 상대방의 모습들을 보게 되고, 서로의 관계에 대해 새롭게 성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우리의 사유는 공간의 영향을 받습니다.

크리스천의 삶의 요소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가정, 둘째는 학교(직장), 셋째는 교회일 것입니다. 삶의 세 가지 요소를 이루는 각각은 서로 다른 공간 속에 존재합니다. 직장에서 일에 치이다 밤 늦게 집에 들어온 가장은 아무리 힘들었어도, 가정에 있는 자녀들의 모습을 보고 난 후, 일순간에 힘듦이 싹 사라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장소가 직장에서 집으로 옮겨졌을 때, 자연스럽게 가장은 직장에서의 괴로움을 잊어버리고, 가정에 최선을 다합니다. 집에서 교회로 발걸음을 옮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삶의 순간이 예배의 현장이지만, 주일 예배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삶의 예배의 정점이 바로 주일 예배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주일 예배에 우리의 전인격을 쏟아붓습니다. 평소에 육체 노동을 하는 사람도 주일만큼은 정장을 갖춰 입습니다.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기 위해,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교회로 나갈 준비를 하고, 정장을 갖춰 입으면서, 자연스럽게 이 날은 특별한 날, 이 날은 거룩한 날이라는 것을 무의식 중에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삶의 세 가지 요소의 장소가 구별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가장은 직장과 가정이 구별되지 않아, 가정에서만큼은 내가 직장의 스트레스로부터 자유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온라인 예배의 아쉬움도 여기에 있습니다. 자녀들이 밥 먹던 공간, 부모님에게 혼났던 공간에서, 그대로 예배를 드릴 때, 자녀들은 주일의 특별함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침대에 누운 채로 유튜브를 시청하듯이, 예배를 드려서는 안 됩니다. 구분된 공간은 우리에게 구분된 사유를 가져다주는 데, 이와 같이 공간이 구분되지 않는다면, 각각의 현장에 대한 우리의 사유도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게 됩니다.

온라인 예배가 익숙해진 오늘날, 우리는 더욱 더 우리의 마음을 다잡아야 합니다. 모든 공간에는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자녀의 방에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가득하고, 학교에는 성적 스트레스, 학우간의 불화 등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 때만큼은 이러한 번뇌와 고통으로부터 자유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순간만큼은 "오늘은 거룩한 주일이니, 삶의 모든 걱정으로부터 자유하자"라는 전인격적인 선언이 우리의 삶 속에 필요합니다. 그러나 만약, 계속된 온라인 예배로, 삶의 여러 현장과 예배의 현장이 구별되지 않으면, 우리는 예배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놓치기 쉽습니다. 예배는 우리의 삶의 여러 스케줄 중 하나 혹은 일부가 아닙니다. 예배는 우리의 삶의 전부이자, 목적입니다. 온라인 예배의 확대로, 예배의 공간과 삶의 공간이 뚜렷하게 분리되지 않은 오늘날, 우리는 더욱 철저하게, 더욱 치열하게, 나의 전 마음을 예배에 쏟을 수 있도록 마음의 고삐를 당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비록 온라인 예배를 드릴지라도, 현장 예배에 참여하듯이, 일찍 일어나, 예를 들자면, 방청소를 하거나, 예배 시간에 앞서 가족끼리 예배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한 시간을 통해 비록 몸은 집에 있지만, 이 시간은 거룩한 예배 시간임을 의도적으로 의식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온라인 시대, 많은 것들이 편해졌습니다. 몸도 편해지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도 편해져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몸이 편해질수록, 우리는 우리의 마음의 옷깃을 여며야 합니다. 공간의 영향 아래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통해, 더욱 더 전인격적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우리 공동체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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