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쎈 개미이야기 ~~~

작성자
조정희
작성일
2021-12-17 06:51
조회
536
유난히 힘이 장사인 개미가 있었습니다.

다른 개미들은 쌀 한톨을 겨우 드는데

이 개미는 두톨씩도 거뜬히 들었습니다.

많은 개미들이 이 힘 쎈 개미를 우러러 보았습니다.

기고만장해진 개미는

이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었고,

못할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넓은 세상에 나가

자신의 힘을 자랑하고 싶어졌습니다.

개미는 사람들이 많은 시장으로 찾아가서

힘자랑을 하였습니다.

쌀 두톨을 들어 올리기도 하고

쌀 두톨을 집어던지기도 하며

괴력을 발휘하였지만

누구하나 개미를 봐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힘이 센 개미는

자신의 힘에  도취되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힘 자랑을 하다가

커다란 발에 밟혀 죽고 말았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은 그 지식의 힘으로 못할것이 없다고 믿습니다.
권세가 있는 사람은 그 권세의 힘을 과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개미]에 불과 합니다.

우리가 가진 힘이란
겨우 쌀 두톨 드는 힘밖에 안됩니다.

 

 

 

 

하나님을 욕망하라. (요한복음 7장 37-39절 )

 

작가이자, 교수였던, 대표적인 무신론자인,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David Foster Wallace) 는

“인간을 예배하는 존재로 인식”하였습니다.

그는 케니언 대학의 졸업식에서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삶이라는 매일의 전장에서는 무신론이라는 것이 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배하지 않는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엇을 예배합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무엇을 예배하느냐

에 대한 선택권일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숭배하는 것이 무엇이든 우리를 산 채로 집어삼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돈이나 물질을 숭배한다면,

이제는 충분하다는 만족감은 결코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절대로 만족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육체, 미모, 성적인 매력을 숭배하는 사람은 자신이 항상 못생긴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 채 살아갈 것입니다. 권력을 숭배하는 사람은 자신이 약하다는 두려움에 가

득 찬 인생을 살게되며, 그 두려움을 물리치기 위해 타인에게

행사할 힘을 더욱 더 필요로 할 것입니다.

자신의 지성을 숭배하고, 똑똑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은 결국에는 자신이 어리석은 협잡꾼인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항상 누군가에게 들킬 것만 같은 두려움 속에 살게 됩니다.

이런 형태의 숭배에서 진정한 위험은 그 자체가 사악하다거나,

죄를 짓는 일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런 숭배가 무의식적으로 진행 된다는데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46세의 이른 나이에 자살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의식하고 예배할 때, 온전한 예배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의 욕망이 하나님을 욕망할 때, 온전한 예배가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 안에서 성령이 이끄시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의 무의식까지 사로잡고,

하나님을 더욱 욕망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사건은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일어났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은 ‘초막절, 장막절 끝날’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3대 절기 :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초막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와 1)광야에서 장막생활을 한 것을 기념하는 동시에 ,

2) 그 해의 열매의 첫 수확을 감사하는 명절이었습니다.

초막절에는 7일 동안, 매일 실로암 못에 내려가 물을 길어다가, 성전 제단 옆에 붓는 행사가 진행되었다.

제사장이 맨 앞에 서고, 그 뒤에 나팔을 불며 따르는 찬양대와 시편을 찬양하는 백성들의 긴 행렬이 이어

졌습니다.

이 예식은 1)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반석에서 샘물을 나게 하신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또한 2) 풍성한 결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즐거워하는 축제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예수님은 성전에 서서, 많은 유대인들을 향해 구원의 생수를 주시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37-38절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초막절 기간에, 수 많은 유대인들이 다름 아닌,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과거, 광야에서 물이 없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을 나게 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신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며, 자신들에게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1.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다름아닌,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모인,
수 많은 유대인들에게,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리고 이 말씀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많은 이들의 내면 안에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곧,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갈증을 가지고 있다”

는 것을 의미합니다.

파스칼은 그의 책, 팡세에서, “인간에게는 오직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하나님이 만드신 빈 공간이 있다”

고 말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가 단절되는 비극을 겪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단절로 인해, 인간의 영혼에는 '빈 자리’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 그 마음에 일종의 구멍과 같은 것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로인해,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의 단절로 인해, ‘영혼의 결핍’, 곧 ‘영혼의 갈증’을 겪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1. 그런데, 여러분, 의아하지 않습니까?
예루살렘에 모인 수 많은 유대인들은 지금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과거에 그들 조상에게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있습니다.

 
  1. 그런데, 왜 그들은 하나님과의 영적관계가 단절되는 증상을 겪게 되었을까요?
왜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심각한 ‘영혼의 갈증’을 겪고 있을까요?

41-42절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지식이 있다는 사람들은 오히려, 성경을 근거로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성경을 잘못 해석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말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재해석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영혼의 갈증을 겪은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 아닌, 오히려, 예수님을 거부하는 근거로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했을 뿐이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그리고 과거, 그들 조상에게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인 많은 이들의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니 다시 말하면,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욕망하지 않는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런데, C.S. 루이스는 이러한 ‘우리의 욕망’에 대해서 정곡을 찌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갈망이 너무 강하기는 커녕, 오히려 너무 약하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정말 주의해야만 하는 것은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 순간에도 어쩌면, 하나님이 아닌, "우리의 욕망을 예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의 욕망에 대해서 예수님과 동일하게 설명합니다.

(빌 3:18-19)

18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사도 바울은 ‘그들의 신’, 바로, ‘그들이 숭배하는 신이 배’ 라고 말하는데, ‘그 배’는 ‘마음’을 뜻합니다.

 

인간의 마음이 바로, 인간의 ‘욕망의 중추’라는 것입니다.

인류는 인간에 대해, 줄곧, ‘이성적인 존재’라고 이해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 신경과학과 인지과학에 의해서 지지되는 관점은

“인간은 ‘이성과 인식’에 의해 살아가기보단, 비인지적 요소, 즉 ‘무의식’의 지배 아래 살아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그저, 자신이 ‘욕망' 하는대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TV를 틀면, 인간의 욕망을 사로잡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1)먹방, 2)음악은, 3)드라마, 영화 등 인간의 눈과 귀,

그리고 말초신경을 자극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돈을 벌고, 인기를 끌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인간 안에 도사리는 은밀한 욕망을 잘 이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고, 한번 손을 대면 끊기 힘든 것 중 하나가 바로, 술입니다.

술을 계속 마시면, 우리의 몸속 알코올 농도가 높아져서, 몸 안에서 화학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알코올 농도가 떨어지면, 몸이 견디지 못하고, 더욱 술을 목말라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죄에 중독이 될 때, 비록 우리가 마음으로 돌이킨다 할지라도,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한다 할지라라도, 우리의 몸은 계속해서, 죄와 세상을 목말라합니다.

결국, 우리의 몸이 말을 듣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을 죄로 계속 더럽히게 되면,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의 마음은 계속에서 죄를 빨아들이는 흡입구가 되고,

우리의 몸은 마음에 가득한 죄를 계속해서 뿜어내는 출구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의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선 우리의 마음, 우리의 욕망을 바꾸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마음의 욕망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욕망’으로 바꾸어야만 합니다.

인간의 선택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죄에 ‘중독’ 되든지 아니면, 은혜에 ‘중독’되든지…

초대교회의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 ‘좋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좋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거룩을 갈망하는 삶’이다.

“그것은 우리가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서 소유해야만 하는 욕망이다”

여러분, 하나님이 아닌, 우리의 배를 채우기 위한 예배를 경계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 순간, 의식적으로, 그리고 전마음으로,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진짜 하나님을 갈망해야만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세상을 사랑하는 삶으로부터,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삶으로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을 향한 예배야말로, 세상의 욕망에 대항하게 하는 거룩을 갈망하는 삶으로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전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하나님을 욕망하게 될 때,

우리의 영혼의 갈증의 문제가 온전히, 해결됩니다.

38-39절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십자가와 부활로 구속사역을 완성하셨고,

주님의 영광이 온 인류에 찬란하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완성을 통해, 모든 믿는 자들의 마음의

중심에 성령님께서 거하게 되셨습니다.

또한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십니다.

영광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거하시게 될 때, 그때에 비로서, 우리의 마음은 ‘생수의 강이 흐르는 거룩한 성전’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은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가능합니다.

37절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우리가 예배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살아계신 하나님과 생생한 만남을 가지게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목마르지 않습니다.

 

결론 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우리의 예배 가운데, 우리의 전 마음으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영광을 이루신 예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날마다 우리의 일상 가운데, 의지적으로, 의도적으로, 계획적으로, 그리고 반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머무르게 하십시오 하나님에 대한 욕망이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서 날마다 더욱 강해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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