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2(목) 온라인 새벽예배 목사님 말씀

윤휘종 윤휘종
작성일 2020-04-02 12:26
조회 181
2020.04.02.(목) 온라인 새벽예배

 

베다니: 소외된 동네라는 뜻.

 

17: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을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그러나 주님은 충분히 기다리셨다.

 

20: 왜 마르다는 예수님을 맞이하러 나가고 마리아는 안 나갔을까?

상상해보면, 마르다는 예수님께 슬픔을 토로하러 나갔을 수 있고, 마리아는 혼자 슬픔을 삭이며 예수님께 자신의 원망(?)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

 

21: 마르다는 예수님이 병을 고치실 능력이 있으시다는 믿음이 있었다.

 

22: 지금이라도 예수께서 무언가를 해주실 수 있다는 믿음이 마르다에게 있었다. 마르다의 깊은 신앙을 볼 수 있는 장면.

우리는 마르다가 분주하기만 한 줄 아는데 마르다의 신앙은 우리가 그렇게 함부로 단정할 수 있는 얕은 신앙은 아니었다.

23: 우리는 이 말씀으로 죽은 나사로가 살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지금 시대에는 적용하기 힘든 말씀이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당시에 예수님의 부활하실 것에 대한 특별한 표적을 보이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질병으로부터 고치실 것을 믿지만 언젠간 죽는다. 그러나 우리도 마지막 때에 부활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24: 마르다의 신실한 믿음을 보여준다.

당시 사두개인은 내세, 부활, 심판을 믿지 않고 권력와 야합하여 현실에서 부를 누리기 바빴다. 그들은 헬라 철학에 심취했고, 영적 존재를 믿지 않았다. 이와 달리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믿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의에 눈이 가려져 예수님이 메시야인줄 믿지 못했다.

 

그러나 마르다는 부활의 주권자가 예수님이심을 믿는다. 우리와 같은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 신앙이 깊은 여인이었다.

 

25~26: 이 말씀은 나사로를 살릴 것을 뜻하기도 하고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이중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죽음은 영원히 사는 과정이다. 예수의 십자가 죽으심 부활 이후에 우리의 죽음은 잠깐 잠드는 것이다.

 

27: 당시의 제자들에게도 없는 마르다의 믿음.

 

주님은 생명의 주권자, 영원한 영생의 근거,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하시는 우리의 구원자이시다.

 

우리는 질병으로부터 낫길 기도하지만, 언젠가 죽는다. 나사로도 다시 살았지만 그 끝에 죽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 영원한 생명에 참여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은 믿는가?”이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고전 15:19

 

오늘 하루도 영생을 사모하며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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