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3일 주일 2부 ㅡ 5부 온라인예배...

Cafe
작성자
기자부
작성일
2020-12-13 21:31
조회
1405





9시 2부 온라인예배...







3부  11시 온라인예배 .....









1시  4부 온라인 예배





2시 5부 청년부예배














'우리! 행복합니까!'(눅19:1~10)

 

코로나19로 어두운 터널을 계속해서 지나오고 있습니다

분명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인데 부동산 시장이나 주식시장은

너무나 뜨겁습니다. 왜 그럴까해서 다양한 책들을 읽어보았는데

한국만이 겪는 특별한 부분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어려운 때에도 부동산 시장이 뜨거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

요즘 영끌 이라는 단어가 유행합니다.

많은 청년 세대들이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집을 장만하겠다

집 한칸 있으면 인생의 든든한 기초가 될 것이다 라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 속에 자리 잡은 열망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경쟁 구도 속에서 내가 이것을 준비하면

인생 속에 앞서갈 수 있다.라는 생각들이 많습니다.

주식시장도 긍정적인 면 보다는 위험한 요소가 많아 보입니다.

결코 만만치 않은 현실임을 직시할 수 있습니다

과연 어디에 행복이 있을까 ?

어떻게 살아야 행복이 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칼붓세-(독일,시인)

*산 너머 저쪽 하늘 멀리 멀리 찾아가면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기에

아, 남들과 어울려 행복을 찾아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울면서 되돌아왔네.

산 너머 저쪽 하늘 저 멀리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건만....

 

행복이 과연 거기에 있을까요 ?

제가 청소년 때에 마음에 담았던 시입니다

행복이 어디에 있을까 ?

야학을 다 청산하고 일반 학교로 가면 행복할까 ?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행복할까 ?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었던 청소년 시절이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인가?

많은 사람이 돈의 행복에 가치를 부여합니다

부요 하면 난 행복 할거야...

권력을 잡으면 행복 할거야....

정말 일까요 ?

 

오늘 성경에서 그 해답을 발견하게 됩니다.

*삭개오 ㅡ주변 모든 사람들의 비판이나 시선에는 아랑곳없이

오직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살았던 자.

출세, 성공, 부자만 되면 그뿐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한 남자

세상의 매도와 손가락질을 받으며 탐욕스럽고 교활한 모습으로..

유대인들이 가장 경멸하는 이름 세리들이었습니다.

그는 여리고의 세리장이었습니다.

가장 부요했던 도시

요르단 지역과 경계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역에 열심이었던 도시 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그 도시의 세리장이었습니다

 

*삭개오

*그러나......

*그의 가슴은 마치 텅 빈 듯

*“이건 사는 게 아니야”

로마의 앞잡이로 살면서

사람들의 손가락질, 비웃음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살아갈수록

텅 빈 영혼이 그의 영혼을 텅 비게 합니다.

이것이 제대로 사는 것일까 ?

한때는 그것이 자신의 야망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알았지만

그의 영혼은 유린당하고 공허한 느낌들, 그의 영혼은 목마르기 시작합니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위장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그에게 소문이 들려옵니다.

예수께서 이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소문...

그 소문이 그의 가슴을 울립니다.

이 여리고를 지나가는 것은 마지막 지나가는 현장입니다.

이제 예루살렘에서 체포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놓으실 시점이기에...

 

우리의 구원자 메시아 !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을 메시아로 믿고 따랐습니다.

정작 사람들이 예수를 따랐던 이유는 한 켠으로 국가를 회복하는 메시아

이 모든 눈물과 고통을 종식 시킬 메시아로 그분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의 모든 죄를 종식 시킬 메시아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그 죄는 윤리 도덕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부하는 근본적인 죄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분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구원자

그 모든 근본적인 죄, 윤리 도덕의 모든 죄를 담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때 나사렛의 목수 출신이었던 한 청년이 삭개오가 살고 있던

여리고 성을 지나가시는 것입니다 ㅡ최후의 찬스였습니다.

그 예수께서 삭개오가 살고 있는 지역을 지나가시는 상황입니다

이 삭개오의 마음속에 예수가 누구신가 보고 싶은 마음이

삭개오의 가슴속에 열망으로 자리 잡습니다

 

그 텅 빈 영혼의 여백 속에 하나의 열망이 우리 인생을 바꾸는 위대한 능력이 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예수의 죽으심이 우리의 모든 죄를 전할 때 툭 던져진 복음 하나가

그들의 빈 영혼 속에 파문을 일으킬 기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罪)

*십자가--그 모든 우리의 죄악을 사하시는 유일한 방법

*그 십자가에 달려 죽어주시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

*그 예수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

*나 같은 사람도 용납하고 품어 주실까?

그 이면에 다양한 정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예수가 많은 사람들 죄인들을 용납했다는데 하는....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 거리로 뛰쳐나갔지만

이미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이미 인산인해였습니다.

 

* 삭개오의 핸디캡

* 이미 삭개오를 알고 계신 예수

* 수 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삭개오가 올라 앉아있는

뽕나무 아래로 다가오신 예수

3절 ㅡ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4절 ㅡ뽕나무에 올라가니....

5절ㅡ 우러러 보시고..

상당히 높이 올라간 삭개오 입니다.

 

예수를 보겠다는 용기와 도전이었습니다.

그의 눈이 예수님을 따라가는데 예수께서 삭개오가 있는 나무 밑까지

오셔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너희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삭개오야! 오늘 내가 너의 집에 유하여야겠다”

*내 이름을 아시는 분

얼마나 큰 충격이 임했을까요.

귀 뒤에서 들려오는 많은 소리들..

*유대인들이 그를 평가할 때 ㅡ세리장, 매국노,

비난과 정죄하는 과격한 소리들 뿐이었는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전혀 다른‘ 삭개오야 ’라는 따뜻한 이름을 듣게 됩니다.

 

정죄하는 목소리가 아닌 자기 내면을 터치하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삭개오야...’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전인격을 아는 것입니다.

 

그 예수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그의 마음속에

깊은 울림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내 이름을 아시는 분..

나를 아시는 분,..

놀라운 파장들이 나타나고 있었을 것입니다.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한복음 10:14-16)

 

*잃어버린 양을 부르는 목자의 음성입니다

삭개오야...

내가 이렇게 목자를 잃어버리고 이렇게 황폐한 삶을 살았구나..

내가 길을 잃어버리고 절망 속에 살아 왔는데 ...

내 이름을 불러주시는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 6절 ㅡ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를 영접하는 삭개오

자신의 전인격을 그분께 내려놓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원자로 영접하는 삭개오

*기쁨 ,,,감격,,,, 사는 맛

 

나를 아시는 당신 나의 인생의 모진 풍파를 아시는

당신께 나는 내 모든 삶의 주권을 위임합니다.

오시옵소서 영접하는 것입니다

전인격으로 예수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삭개오가 ㅡ영접 하는 자 가 된 것입니다.

 

*7절 ㅡ 사람들은 예수님까지도 성토하고 그 인격을 난도질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묵묵히 삭개오의 영접을 받고 그 집에 들어갑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 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누가복음 19:8)

*삭개오의 전적인 회개와 선언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 중심의 삶을 살 것을 선언합니다.

그의 가슴속에 가득 채워지는 환희와 기쁨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오늘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때에도

예수께서 날 부르는 소리를 느껴보시지 않겠습니까 ?

그렇게 우리를 불러주셔서

우리가 지금 예수를 나의 구원자로 믿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고백하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불러주시고 자기를 알아주시고 자기를 수용할 때

그 예수가 자신의 모든 죄를 용납할 때

그때 느끼는 행복감은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소중한

은혜임을 그는 발견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

무엇 때문에 행복하고 왜 행복 합니까 ?

힘들고 어려운 터널을 여전히 지나가지만 예수가 나를 알고

구속하시고 우리안에 그의 성령이 내재하셔서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게 하시고 매 순간 은혜 가운데 살게하시고

그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을 여전히 뛰게 하는 동력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떠나면 행복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안에 이 행복이 가득히 채워져서

나를 부르시고, 용납하고, 사랑하는 음성을 통해서

다시 한번 더 힘을 얻는 복된 시간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