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예배 2020년 기도제목을 올려드리며...

작성자
로뎀지기
작성일
2020-01-02 07:04
조회
981






은혜로 살아왔습니다.
한해의 끝자락에서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를 올려드립니다.

소망되신 하나님 아버지 크신 은혜와 사랑 감사하고 송축합니다.
365일 지켜주셨기에 한해의 끝자락에서서 가슴 저미는 예배를 올려드립니다
다사다난 했지만 은혜로 살아 왔습니다.
주께 드릴 고백은 오직 감사합니다. 하는 고백입니다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살아보려 할 때 넘어지고 절망할 때 있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우리가 여기에 서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지만
은혜로 살아왔기에 그 은혜로 한 발 내 딛습니다
인생의 미래를 향해서 벅찬 가슴으로 한 발 내 딛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전 마음을 올려드립니다
이 시간 가슴깊이 담아온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필요한대로 응답하시고 역사하시길 원합니다.
한 곁 같은 은혜와 사랑으로 승리의 삶 살아가도록 강권하여 주시옵소서.
듣는 마음 주시고 진리 안에 견고히 서는 복된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ㅡ2019년 송구영신예배에서 드려진 목사님의 기도 ㅡ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91:1~16)

오늘 본문은 참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가 되신다. 주의 강한 손으로 나를 붙드신다는
약속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속에 담겨있는 맥락을 보면
이 모든 약속의 말씀이 성취된 분이 예수그리스도라면
진정으로 영광을 올려드린다는 말은 무엇이었을까 ?
어떤 환란에서도 나의 피난처, 보호자가 되셔서 나를 안전하게 보호하실 것이다.

앞으로의 삶도 완벽하신 보호하심으로 우리를 늘 굳세게 승리케 하실 것이다.
라는 말씀으로 오늘 본문을 이해해서 참 좋다 싶었습니다만은
본문 말씀을 깊게 묵상하다보니 전혀 다른 결과의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서두에 드린 말씀은
*'내가 복음'(?) 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말씀 앞에 따르고 철저하게 순복함이 아닌
내가 원하는 대로 말씀을 끌고 다닐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처음 읽을 때는 본문 말씀이 달콤한데
읽을수록 쓰디쓴 아픔이 느껴지는 말씀 이었습니다.
말씀에 의해서 순종한다면 이 본문은 상당히 깊은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관점에서 이 말씀을 이해하셨고 성취하셨을까?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피난처시다 했는데 ...예수그리스도에게도 피난처였다면
십자가를 피할 수 있었음에도.. 왜 기어코 감당 하셨나 ?
본문이 주는 역설입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대로 말씀을 끌고 가고 안전하고 형통하기만 기도한다면
오늘 본문은 다른 방법으로... 성취되어가는 현장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시편 91:1-2)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시편 91:7)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정말 좋은 말씀이구나 싶었는데
11절부터 제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11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시편 91:11-12)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60년 넘는 포로생활을 할 때 였습니다.
내가 너희를 안전하게 인도할 것이다 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아닥사스다의 호의와 보호를 거부하고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담대하게 믿음을 드러냅니다.
이 언약의 말씀이 주어진지 1세기도 안 되어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바벨론에서의 귀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태복음 4:7)
예수님께서 사단의 유혹을 거부하는 내용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다르게 적용하셨는가?

사단아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책망 하십니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지만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시고 십자가로 내 몰리시는 예수님...

우리는 복도, 형통도, 언약도 우리식으로 해석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뜻대로...
하나님의 언약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가 되어 주시기만을 원하고
형통함, 부요함, 복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습니다만은..
예수에게는 하나님의 언약과 뜻이 더 중요했음을 우리 앞에 드러냅니다.
당신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어떻게 예수에게 성취 되는가 !

*궁극적으로.....

당신이 십자가에 내 몰려서 처절하게 십자가에 죽게 되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끝이었다면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분이 십자가를 관통해서 다시 살아나시고 구속을 성취하시고
진정한 영광을 성부하나님께 올려드렸기에
궁극적으로는 이 약속이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형통함, 부요함만을 기도하지만
본문은 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고 피난처가 되시는데
우리가 한해동안 기도하고 하나님 의지하고 믿음으로 살아온다고 했지만
다 똑같은 삶은 아닙니다.

동일하게 기도하는데....누군가는 육체의 질병 때문에 기도했는데
보호자가 되어주시고 피난처가 되어주셨습니다
마치 히스기야처럼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  누군가의 기도는 응답되었고 누군가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목사로서 먹먹할 때가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이 불공평하실까 ? 싶을 때가 있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신데..
공동체 안에도 불공평한 현실이 많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우리가 추구할 것은..
‘병 고침을 받았는가 ? 형통하게 되었는가 ? 부요해졌는가? 자녀를 주셨는가?
이런 것만이 아닌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감격하고 사는가 ?
모든 삶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고 인정하고 사는가 ?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주는 깊은 의미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을 견뎌내는 삶

히11장6절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라” 말씀 합니다
하나님께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상을 주셔야 하는데
11장 믿음 장에 보면 눈에 보이는 상을 받은 사람들이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아벨이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지만..
들에서 죽임을 당하는 최초의 순교자가 됩니다..
*에녹은 패역한 시대에 복음을 증거하며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지만
매일 마다 죽음을 경험하며 삽니다.
*노아는 산 위에 방주를 120년 동안이나 만듭니다. 그것이 낭만이었을까요 ?
곧 홍수가 날 것이다, 방주에 들어와야 삽니다 할 때
미친 사람 취급당했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재앙처럼 보였겠으나
믿음의 모든 선진들이 순교자의 삶을 삽니다

대체 무슨 복을 받았다는 걸까 ?
성경은 말씀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세상이 전혀 알 수 없는 상 주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
어떤 상황조건에서도 오늘 하나님을 신뢰하여 견뎌내는 삶입니다.

* 부요함이 ㅡ나를 교만하게 만들거나 나를 안락함에 빠져들게 못하도록..
* 가난 할 때도ㅡ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고 견뎌 내는가..
* 건강 때문에 ㅡ오만하지 않도록
* 병 들었을 때 ㅡ 그 병이 나를 쓰러지게 못하도록..

*신앙은 어떤 상황에서도 ㅡ버텨내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 의지함으로 나아가겠습니다.
하는 선언이 필요합니다.
영광의 본체이신 예수께서 그 영광 다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신 그 예수님처럼 ...

*바울 사도의 고백

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1-13)
우리는 13절을 참 좋아합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의미는 가난할 때나 부요할 때나
그것이 나의 삶을 장악하지 못한다.
오직 나는 예수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에...
내가 바닥을 기어도, 하늘 높이 올라가도 여전히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주권자라는 선언입니다.

‘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시편 91:1-2)
내가 주님 사랑하는데 왜 내 인생이 이렇게 힘든가요 ? 원망할 마음이 들 때
‘궁극적으로...’ 그 날에 누릴 영광, 광휘를 기억해야합니다.
십자가는 예수께서 철저하게 성부하나님께 자신의 전 인격을 위탁하신 현장입니다.
다시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주가 되시고 모든 민족이 그 앞에 무릎 꿇게 하시고

모든 민족이 주로 고백하도록 하신 것을 성경은
궁극적인 영광이라 말씀합니다...
진정한 구원과 영생 그 영광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을 복이라 말씀하기에
오늘 매일 준비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인의 전 삶,,,

제대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하나님 사랑 합니다’ 하는데 과연 그 사랑이 뭘까요?
성자예수께서 성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 뜻에 따라 철저하게 복종 합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성부의 뜻에 부르심을 입게 하십니다.

우리의 의지 힘도 아니라 오직 은혜입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여전히 은혜 앞에 다가 섭니다.

*오직 은혜로 오직 은혜로
믿음으로 다가서야합니다.
부요해도 어려워도 건강해도 이만하면 되었다가 아니라
여전히 그 은혜 갈망하며 믿음으로 나아가야합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진정한 피난처가 되어주시고
우리의 보호자가 되어 주실 것이기에...

그때까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최선의 것은 여전히 감사하고 신뢰하고
한걸음씩 더 내 딛는 것입니다.
언제나 낙심하지 않고 신실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오늘을 견뎌내는 것이 신앙입니다.
오늘 내가 더 하나님 의지하고, 신뢰하고 , 더 감사하겠습니다.
고백하는 것이 진정한 복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궁극적인 보호하심이

우리 삶 가운데 완성되기를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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